최근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는 구리 가격이 하락세라는 소식에 이것이 세계 경기 둔화 조짐을 의미한다는 관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 구리는 전통적으로 세계 경기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업계에서는 ‘구리 가격에는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는 맥락에서 ‘구리 박사(Dr.Copper)’라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구리가 세계 경제와 투자의 가늠자로 여겨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표면적으로 구리 가격의 등락은 세계 최대 공업 국가인 중국 경기의 흥망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글로벌 구리 가격이 떨어진다는 건 그만큼 중국에서의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중 양국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 경기가 앞으로 더욱 큰 하락세를 띄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 봤을 때 구리 가격의 변동세는 구리를 생산하는 국가들의 화폐 가치 변화를 반영한다. 구리는 주로 세계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흥국들이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 칠레(35.6%) 페루(14.8%) 중국(9.8%) 순이다. 결국 구리 가격이 하락한다는 건 이들 신흥국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구리 가격 하락이 꼭 세계 경기 둔화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예전에 비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공급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구리 채굴량은 지난 20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연간 90억t가량 생산되던 것이 2017년에 와서는 191억t으로 급증했다. 초과 공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글로벌 경기 변화 이외의 변수들이 구리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칠 여지도 커지게 된다. 구리가 더 이상 국제 경기의 바로미터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