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차기 총수 공정위의 '직권' 지정
명확성 원칙·과잉금지 원칙 위배 여지 커
경제력집중 억제제도 근본적인 개선 절실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한진그룹의 차기 총수(동일인)로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사장)를 지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공정위가 직권으로 지정한 이유는 내년 5월 1일 기업집단지정을 위해서는 올 5월 15일까지 한진그룹의 총수를 지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정편의를 위한 것이란 의미다. 문제는 공정위의 섣부른 지정으로 이름뿐인 총수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상속인 간 지분이 6%대로 거의 비슷해 누가 총수가 될지 확실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14.98%를 소유한 KCGI(일명 강성부 펀드)의 최대주주가 사실상 한진그룹을 지배하는 총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조 사장을 총수(동일인)로 지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혈족 6촌, 인척 4촌이 최대주주인 계열사 32곳을 한진그룹 집단으로 지정했다. 앞으로는 조 사장을 중심으로 상호출자금지, 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등 한진그룹의 경제력 집중 및 남용 억제에 관한 규제를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정거래법상 존재하는 그물망 같은 규제를 위반하면 행정벌은 물론이고 형사벌도 받게 돼 조 사장이 경영권 경쟁에서 영원히 낙오되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공정위도 총수 지정 관련 허위자료를 제출하면 조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조 사장은 자의든 타의든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꼴이다.
이 시점에서 공정위가 서둘러 총수를 지정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 사장을 총수로 지정한 것은 법치주의의 핵심인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일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지정 제도는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가 경제력 집중 규제를 위반해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는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경쟁제한 행위를 할 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진그룹은 상속인 간 경영권에 관한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도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경쟁제한 행위를 할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거래법도 이 경우 누구를 총수로 지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물론 공정위로선 불가피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총수로 확정되지 않은 자를 행정편의를 위해 총수로 서둘러 지정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조 사장의 총수 지정은 또 헌법 제37조 제2항이 규정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크다. 입법론적으로 볼 때 공정거래법상 행정적 편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총수의 직(職)을 수행한 경우라면 이에 대한 면책 또는 책임 감경에 관한 규정이 존재해야 마땅하다. 만에 하나 다른 상속인 중 일부가 고의로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으면 조 사장은 불가피하게 2년 이상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늦어도 내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끝나면 한진그룹 총수는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3월 이후 총수를 지정해도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이는 부적절한 방법으로 사업자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으로써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동일인 지정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세계적으로 대기업집단 및 총수를 지정하고 이들에게 특별한 규제를 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참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공정거래법상 경제력 집중 억제 제도의 근본적 개선 방안을 제시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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