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형 일자리' 추진 논란
[ 좌동욱/고재연 기자 ] ‘제2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조만간 확정될 것이라는 청와대의 발표 이후 국내 배터리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사업에 참여할 후보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수요처인 완성차 업체들이 내건 조건에 따라 공장을 신설하는 산업 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기업들에 국내 투자를 종용한다는 게 업계 하소연이다.
21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 SK, LG그룹의 대관업무 실무자들은 지난 19일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의 발언 진의를 파악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업체들이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과거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경북 구미시가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 측은 “투자 여부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검토한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업체들은 “투자 요청을 거절하면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신증설 투자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중 일부를 국내에서 생산하면 된다는 논리로 기업들을 설득하고 있다. 재정, 세제, 인프라 조성 등에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놓겠다는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청와대와 정치권의 국내 투자 주문에 대해 “산업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이라고 날을 세웠다. 전기차용 배터리산업의 핵심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해외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따내는 데 있다. 완성차 업체가 내건 조건을 가장 가깝게 맞춘 업체가 납품업체로 선정된다.
LG화학 고위 관계자는 “배터리 성능이 중요해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자동차 생산라인 인근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신공장을 지을 배터리 수요가 없다는 의미다.
지역(구미)과 분야(배터리)를 미리 정해 놓고 투자를 종용하는 방식도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와 구미시가 국내 배터리업계에 투자 의사를 본격 타진한 시기는 지난 1월 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해당 기업들은 아직 구미시와 세부 지원 방안도 논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동욱/고재연 기자 leftking@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