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떠나는 이상화
재활 훈련하며 복귀 꿈꿨지만
몸상태 호전 안돼 결국 은퇴
'스포테이너'로 제2의 인생
[ 조희찬 기자 ]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이젠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빙속여제’ 이상화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1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공식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회를 주체하지 못한 듯 그는 눈물을 쏟았다. 늘 피니시라인만을 보고 달려온 그는 은퇴를 통해 비로소 ‘마음의 자유’를 얻은 듯했다. 우리나라 빙속 단거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스포트라이트 속에 살았고, 그 화려한 빛의 무게를 견뎠다. 이상화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대표팀 막내로 참가해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말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흘렀고, 선수로서, 또 여자로서 많은 나이가 됐다”며 “분에 넘치는 국민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짜여진 일정대로 운동하는 반복되는 패턴을 내려놓고 싶었다”며 “오후 3시가 되면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평화롭게 산책하며 지내고 싶다”고 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원없이 자보는 것이다. 그는 “알람을 끄고 편하게 잘 생각”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상화는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선수 생활 연장 의지가 강했다. 수술 대신 재활훈련을 택하며 현역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정상에서 물러나기로 마음을 돌렸다.
이상화는 은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두루 넘나드는 ‘스포테이너’로서의 낯선 삶이다. 스포츠 전문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연예 소속사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가수 가희, 황광희 등 전문 방송인과 격투기 선수 추성훈 등이 소속된 곳이다.
이상화는 “이 순간이 지나고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지만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며 “비록 스케이트 선수 생활은 오늘 마감하지만 항상 빙상 여제라 불러주던 것처럼 최고의 모습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화는 16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휘경여중에 다니던 때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국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빙상계의 간판 스타로 떠올랐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500m에서 2연패에 성공하고 세계신기록을 네 차례나 갈아치웠다. 여자 빙상 단거리에 그의 적수는 없었다. 그가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500m 2차 대회에서 세운 36초36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세계신기록이다.
그는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당시 단거리 최강자였던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일본)를 상대로 역주를 펼친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메달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 메달이 됐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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