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4개월만에 최저
원화 둘러싼 3대 쟁점
(1) 원화가치 급락, 왜?
(2) 환율 얼마나 더 오를까?
(3) 자금유출 우려는?
[ 고경봉 기자 ] 원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130원대 초반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 만에 50원 이상 상승해(원화 가치 하락) 1180원 언저리에 도달했다. 지난 10일 장중 1182원90전으로 치솟기도 했다. 2017년 1월 17일 이후 2년4개월 만의 최고치다. 최근 상승폭만 보면 경제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동안 1115~1135원 선의 박스권을 지키며 옆걸음치던 모습과 180도 달라졌다. 지난 9, 10일에는 불과 몇 분 만에 3~4원가량 급등락하는 불안 양상을 보였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계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환율을 둘러싼 세 가지 쟁점을 짚어봤다.
(1) 원화 가치 하락 유독 빠른 이유
원·달러 환율은 9일 1179원80전까지 상승하며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4월 이후 상승률은 4.06%다. 같은 기간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중 한국보다 달러 대비 환율 상승폭이 큰 나라는 극심한 고물가와 경제난에 시달리는 터키, 아르헨티나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과 무역갈등을 벌이는 당사국인 중국도 오름폭이 1.72%에 그쳤다. 원화 가치 하락이 미·중 무역갈등의 영향만으로 보기에는 힘들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대외 변수 외에 국내 경기 침체 우려가 반영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달러를 선취매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원화 가치 하락폭을 키웠다”고 해석했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글로벌 투자자에게 상당한 불안감을 안겼고 환율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달간 환율이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시기는 1분기 성장률이 발표된 지난달 25일 전후 3일간이었다. 여기에 한동안 수면 밑에 있던 대북 리스크가 다시 부각된 점도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2) 환율 얼마나 더 오를까
환율은 단기적으로 미·중 무역협상 진행 상황에 따라 움직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이 불투명해질 경우 1190원 선도 뚫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1200원이 1차 저항선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그동안 환율이 오를 때마다 수출업체의 네고(달러 매도) 물량이 나오며 이를 눌렀는데 최근에는 수출 업체들도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으로 관망하고 있다”며 “협상 결과에 따라 단기적으로 1200원을 터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 연구위원은 “미국이 결국 관세를 인상했는데 여기에 중국의 보복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무역 갈등은 전면전이 되고 환율 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반대로 무역 협상이 타결 조짐을 보인다면 환율이 단기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경기 우려 때문에 환율이 상승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3) 자금 유출 가능성은 없나
올 들어 한·미 간 시장금리 역전 폭이 커진 가운데 환율까지 급등하자 외국인 자금이 한국을 빠져나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외국인들은 1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올 들어 최대 규모로 주식을 처분했다. 신 교수는 “시장에서 자금을 뺀다고 해서 당장 한국을 떠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대규모 이탈 징후는 찾기 힘들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국내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 중에는 국부펀드 등 장기 투자자 비중이 높아 단기적인 환율 움직임이나 미·중 무역갈등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국내 경기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면 자금 이탈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4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가 심각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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