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억弗 통큰 투자…신동빈 회장의 '10년 대계'
[ 김현석 기자 ]
롯데케미칼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자해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준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축하했다.
롯데케미칼은 9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에탄크래커(ECC) 및 에틸렌글리콜(EG)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이 공장은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을 활용해 연간 100만t의 에틸렌과 70만t의 에틸렌글리콜을 생산한다. 이 공장 가동에 힘입어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생산량은 세계 7위권인 연간 450만t으로 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메시지를 보내 “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기업의 최대 규모 대미 투자로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번 투자는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이고,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준공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 공장의 준공은 한·미 동맹의 증거이며 이 공장의 발전은 한·미 동맹의 발전을 증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세계 수준의 석유화학 시설을 미국에 건설·운영하는 최초의 한국 석유화학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국 화학산업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美 '셰일혁명' 중심에 깃발 꽂은 롯데…"석유화학 글로벌 톱7 도약"
미국의 ‘에너지 수도’ 휴스턴에서 멕시코만을 따라 동쪽으로 240㎞ 떨어진 루이지애나주(州) 레이크찰스. 10번 고속도로 옆으로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공장이 밀집해 있다. 쏟아져나오는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유화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롯데케미칼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미국 ‘셰일혁명’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9일(현지시간) 준공된 레이크찰스의 에탄크래커(ECC)에선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을 활용해 연간 10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하게 된다. 이 중 절반은 미국 현지 합작회사인 웨스트레이크케미컬에 넘기고, 절반은 바로 옆 에틸렌글리콜(EG) 공장으로 가져가 EG로 가공한다. EG는 페트병, 화학섬유 등을 생산하는 재료다.
이 공장은 부지가 축구장 152개 크기인 102만㎡에 달한다. 투자비는 총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로,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지은 화학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이뤄진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 규모 중 가장 크다.
롯데 미국공장 단가 낮춰
셰일혁명은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어 놨다. 2005년만 해도 미국 내 천연가스 현물 가격(헨리허브 기준)은 MMBtu(100만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당 10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2~3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셰일가스가 쏟아져나온 여파다.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값도 함께 하락했다. 과거 나프타보다 비쌌던 에탄값은 현재 나프타의 절반에 불과하다. 황진구 롯데케미칼USA 대표(전무)는 “셰일가스만 충분히 나오면 에탄 가격은 무조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화기업은 에틸렌을 모두 중동산 나프타에서 뽑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유화공장을 세우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사장)은 “미국에서 셰일가스로 에틸렌을 만들면 비용이 t당 400~500달러인데, 한국에서 나프타로 하면 t당 900달러가량 들어간다”고 말했다.
현재 에탄 가격대라면 영업이익률 30% 선은 문제 없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롯데는 레이크찰스가 있는 루이지애나주로부터 세금 감면, 시설대 저리 차입, 발전기금 등 인센티브도 두둑하게 받았다. 내년에 완전가동되면 매출 9000억원, 영업이익 33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시장도 가깝다. 생산량의 상당량을 미국, 유럽에서 소비한다. 원료다변화와 시장다변화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것이다.
신동빈 회장의 승부수 통해
롯데가 셰일발(發) 기회를 잡은 것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발 빠른 판단 덕분이다. 셰일혁명 초기인 2010~2012년 글로벌 유화기업들은 ECC사업 검토에 들어갔다. 셰일가스 증산으로 기회가 생길 것이란 예상이었다. 다우, 엑슨모빌 등이 먼저 나섰고, 롯데도 2년간 검토해 2014년 설립을 발표했다. 그게 ‘ECC 퍼스트웨이브’(제1의 물결)다.
현지 업체인 웨스트레이크와 손을 잡은 건 화룡점정이었다. 포천 500대 기업인 이 회사는 롯데로선 생소한 미국에 공장을 짓는 데 큰 도움을 줬다. ECC는 롯데가 88%, 웨스트레이크가 12%를 출자했다.
공장 건설에선 한국식 노하우로 어려움을 뚫어냈다. 인천에서 플랜트를 제작해 통째로 바지선에 싣고온 뒤 레일을 깔아 현장으로 실어날랐다. 이를 용접하는 방식으로 공기를 단축했다. 롯데가 먼저 착공한 다른 업체를 추월해 지난 3월부터 시범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ECC 퍼스트웨이브에 참여한 국내 유화업체는 롯데가 유일하다. 사업을 검토하던 SK이노베이션, LG화학 등은 2014년 하반기 유가가 급락하자 포기했다. 롯데도 당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유가가 다시 오를 것으로 확신한 신 회장은 밀어붙였다. 실제 작년부터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 또 기술 발전으로 셰일 채굴원가가 낮아지며 미국은 지난해 말 세계 1위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셰일가스가 뿜어져 나와 더 이상 증산이 없다 해도 30년간 에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롯데의 꿈은 더 크다. 벌써 미국 공장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 140만t으로 키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도네시아, 국내(여수 울산 대산) 등에도 추가 투자해 연 20조원 미만인 매출을 2030년 50조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유화업계 22위(매출 기준)인 롯데 화학BU의 매출은 세계 7위로 부상한다.
레이크찰스=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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