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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사설 깊이 읽기] 기업 회계 투명성 객관적으로 다룰 조정기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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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회계감리 투명성과 신뢰 높일 '심판원'도입, 검토할 때 됐다

투명한 기업 회계는 자본시장 선진화뿐 아니라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전 규제나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제재가 비현실적으로 과도해질 경우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에서 ‘회계 리스크’라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바이오분야 같은 신산업에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지난주 한국회계학회 특별세미나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해볼 만한 정책적 대안이 제시돼 주목된다.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 기업의 방어권을 강화해준다는 차원에서 국세심판원과 비슷한 성격의 ‘회계심판원’ 같은 기구 설립을 검토해보자는 주장이었다. 회계위반으로 기업이 중징계를 받으면 주가가 폭락하고 상장폐지에 내몰리는 등 존폐 위기에 처하지만 구제 제도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금도 본격적인 법률 쟁송에 앞서 조세 특허 토지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정심판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회계는 특유의 전문성 때문에 이 제도에서 사각지대로 밀리고 있다. 따라서 국세처분에서 고유의 구제 기능을 하는 조세심판원 같은 기관을 두고 회계처리기준, 회계감사기준, 제재 양정기준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조세심판원의 납세자 주장 인용률이 27%(2017년)에 달한다는 사실에도 시사점이 있다.

고의성 있는 회계 위반에 대한 엄격한 대응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 체제에서는 해석과 재량의 여지가 많아 법적 분쟁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행정심판은 부실하고 법원 소송은 고비용에 시간도 많이 걸리는 만큼 이런 식으로 기업 방어권을 보완해주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정부기관 신설에 부담이 크다면 반민반관(半民半官)의 중재조정기구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4월 2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투명한 회계는 신용사회의 토대
기업·감독기관 인식 차이 생기면
이를 중재할 제3기관 설치해볼만

선진사회가 가능하도록 떠받치는 요소는 무척이나 많다. 바꾸어 말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성숙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많다. 공정한 선거제도나 투명한 정부, 확실한 3권 분립과 법치·준법정신 등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런 것들은 드러나는 제도여서 비교도 쉽게 된다.

진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게 있어야 한다. 교육, 경제와 정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 개인의 존중과 포퓰리즘 배제 같은 ‘비정형’ ‘무형’의 인식이나 관행 요소도 중요하다. 이런 범주에서 신뢰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고도의 선진사회를 위한 높은 차원의 필요조건에 투명성과 신뢰 시스템의 정립 여부가 포함돼야 한다.

가령 신용카드와 신용결제 시스템을 예로 보자. 신용이 경제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저개발 후진 사회에서는 신용결제 제도가 작동하기 어렵다. 시스템 가동을 위한 기술력이나 자본력 문제에 앞서 ‘신용’의 가치를 모르고, 이를 지킬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면 최첨단 결제 시스템도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이를 잘 활용해서 더 많은 재화를 생산 교환하고, 이를 기반으로 계속 부가가치를 높여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의 이점을 모르면 일회성 이익에 매몰돼 신뢰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신용대출이 저개발국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신용 평가를 중시하며, 개인들이 신용을 어떻게 관리 축적해 왔는지를 엄격히 잰다.

신용은 투명성과 비례적으로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경제를 이끄는 주축인 기업의 발전에서도 신용과 투명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공개된 상장기업의 경우 불특정 다수로부터 필요한 자본을 모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데, 신용이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가치는 아니다.

공개 기업들이 투자자로부터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투명한 회계장부를 내놔야 한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회계처리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맞춰 정확하게 공시할 때 투자자들이 믿고 자금을 맡기게 된다. 이런 투자자금으로 기술을 개발하며,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키운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세금으로 국가사회가 고도화된다. 신뢰와 투명성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경제발전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신뢰시스템과 투명성은 그만큼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다.

문제는 신뢰나 투명성에서 투자자·기업·감독당국(정부) 3자 간 관점이나 인식에서 차이가 날 때도 많다는 점이다. 기업회계 문제를 놓고 장기간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논쟁이 그런 사례다. 현실과 이상의 문제이기도 하고, 선수와 심판의 관점 차이에서 빚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입장차가 팽팽해지고 갈등이 깊어지면 결국 법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지만, 비용과 시간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법적 다툼 이전에 회계 전문가들을 동원한 조정기구를 설치하면 갈등비용도 불이고 기업의 불이익을 덜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회계학회 차원의 문제 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정부(국세청)가 매긴 세금에 대해 납세자가 수용을 못할 경우 찾을 수 있는 국세심판원이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이다. 회계분쟁에도 이를 원용해보자는 주장이다. 신뢰와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제고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 나가야 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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