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과열' 7일 하루 거래정지
"자체 기술 시연회에 구글 참석"
1주일 새 주가 222% 급등 화제
[ 고윤상 기자 ] 국일제지가 코스닥시장의 ‘핫스톡’으로 떠올랐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900~1100원의 좁은 박스권에서 큰 움직임이 없었던 이 종목은 자회사(국일그래핀)가 개최한 8인치 플라즈마 화학기상증착 기술(PECVD) 그래핀 기술 시연회에 구글 엔지니어가 참석했다고 지난달 23일 밝히면서 24일부터 급등세를 탔다. 흑연을 원료로 하는 그래핀은 구부러져도 강도나 특성이 변하지 않고, 전류 전달속도가 빨라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국일제지는 지난 3일 3300원으로 장을 마쳐 4월 24일~5월 3일 상승률은 221.9%에 달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했다고 밝힌 그래핀 관련 기술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에 상용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구글이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 회사의 주장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단기간에 세 배 급등
국일제지는 국일그래핀의 PECVD에 대한 미국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고 지난달 26일 공시했다. 최근엔 이 기술에 대한 비밀유지계약(NDA)을 구글과 맺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PECVD는 화학반응을 통해 선택적으로 원하는 물질을 기판에 증착하고, 불필요한 물질은 외부로 배출하는 기술이다.
각종 호재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국일제지는 7거래일 만에 세 배 넘게 급등했다. 4월 1~23일 하루 15억~25억원에 불과했던 거래금액은 24일 이후 1000억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과열양상을 보이자 7일엔 하루 동안 거래가 정지된다.
이 회사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국내 그래핀 전문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래핀 기술 관련 학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울 소재 대학 A교수는 “국일그래핀이 그래핀의 여러 합성 기술 중 하나를 갖고 특허등록하고 논문을 냈다는 데 비슷한 종류의 특허와 논문은 수없이 많다”며 “해당 기술을 살펴보니 상용화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인치 대면적 그래핀도 개발된 게 9년 전이지만, 아직도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핀 학계를 이끄는 B교수도 “LG전자나 한화테크윈 같은 대기업도 10년 넘게 투자했지만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게 그래핀 기술”이라며 “그래핀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에 투자했다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많다”고 우려했다. B교수는 “국일그래핀이 구글과 맺었다는 NDA도 특정 기술에 관심 있는 기업과 기술개발자 간에 맺는 통상적인 계약”이라며 “이미 상당수 국내 연구자가 구글, 애플 등 세계적 기업들과 NDA를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최우식 국일제지 공동대표는 “국일그래핀은 상반기 내에 8인치 PECVD 제조기술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英서도 그래핀 주의보
러시아 출신 연구자들인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2010년 그래핀 관련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타면서 그해 국내 증시에서도 그래핀 관련 종목들이 급등세를 보였다. 코스닥 상장기업 로엔케이(현 인스코비)를 비롯해 아이컴포넌트, 동진쎄미켐, 티씨케이, 상보 등이 그래핀 테마로 묶이면서 급등세를 보였다가 “상용화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거품’이 꺼졌다.
2017년엔 그래핀을 앞세운 투자사기 의혹 사건도 있었다. 한국인과 중국인 등 11명은 2017년 4월부터 1년여간 중국에 금일그룹이란 회사를 차려놓고 그래핀 기술이 적용됐다며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를 홍보했다. 이들은 투자자 3600여 명으로부터 418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가 사기혐의 등으로 검찰에 적발돼 1심에서 유죄가 나왔다.
영국에서는 2013년부터 ‘그래핀 투자 주의보’가 발령 중이다. 당시 영국에서만 그래핀 관련 특허와 논문이 각각 1만 건 이상씩 나오면서 이를 내세워 투자자 모집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자 영국금융감독원(FCA)이 나섰다.
FCA는 그래핀은 2020년까지 상업적 규모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핀 기술을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FCA는 지난해에도 그래핀 관련 투자에 유의하라고 재차 경고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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