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 100여명 귀환
'家業 리빌딩' 하는 2세들
[ 김낙훈 기자 ]
서울 문래동 4가에 있는 천우엔지니어링(대표 이춘성). 평면연마기로 자동차검사장치 부품을 전문적으로 연마하는 업체다. 이 회사에선 2세인 이승우 부장(40)이 3년 전부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과 국제통상학을 전공한 뒤 기업체 근무와 횟집 경영 등 ‘외도’를 끝낸 그는 가업승계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이 부장은 “다시 문래동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영업을 해봤지만 수입이 들쭉날쭉했는데 금속가공일은 땀 흘린 만큼 돈을 벌 수 있어 가업을 잇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반 열처리 금형 등 소규모 공장이 밀집한 문래동에 2세들이 돌아오고 있다. 대규모 공단에 밀려나 수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던 이곳은 최근 2세 경영인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활기를 점차 되찾는 분위기다. 이준연 케이디시스템 사장(46)은 “최근 5년 새 이곳으로 돌아온 2세들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며 “기술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 더 늘지 않겠냐”고 했다.
활기 되찾은 문래동
문래동의 작고 낡은 공장들은 1940년대 방림방적(당시 사명은 사카모토방적) 임직원 주거시설에서 유래한 곳이 많다. 그 뒤 일반 가정집으로 바뀌었다가 1980년대 청계천 철거가 시작되면서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은 1300여 개 업체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선반 밀링 프레스 용접 표면처리 등 금속가공작업을 하는 업체들이다. 이곳에서 흔히 하는 ‘설계도만 있으면 3일 안에 어떤 제품이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엔 문래동의 자긍심이 숨겨져 있다.
창업자들은 대개 30~40년 경력자다. 나이로는 60~70세에 이른다. 이들의 2세들은 대부분 대학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뒤 기업체 근무와 사업 등으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가업을 잇겠다며 돌아온 2세 중엔 속된 말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본 이들도 많다. 이들은 적잖은 세월을 돌았지만 부친의 뒤를 이어 금속장인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다도기계의 박병준 과장(25), 한서정밀의 도한규 팀장(31) 등이다. 박 과장은 음식에 취미가 있어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했다. 국내 굴지의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비전이 별로 없다고 판단해 부친인 박명동 사장이 운영하는 다도기계에서 수치제어(NC)선반과 밀링 작업을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도 팀장은 번듯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사무직으로 나가봐야 몇 년 못 버틴다”며 “차라리 금속가공 장인으로 크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유해 문래동으로 들어왔다. 이준연 사장은 유학을 준비하다가 부친의 뒤를 이어 문래동에서 열처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력 분야는 항공기부품, 판형프레스제품, 특수스테인리스, 밸브 등의 열처리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박차
2세들은 가업승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기존 사업에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적용하고 접목할 방안을 끊임없이 타진하는 이유다. 공장 칸막이를 걷어내고 적극 소통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업 공간을 찾으려 하는 것도 이들이 부친 세대와 다른 점이다.
이준연 사장은 지난 2월 ‘엠마이스터즈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엠마이스터즈’는 ‘문래장인’이라는 의미다. 그는 “문래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임가공 중심이어서 부가가치가 낮다는 것”이라며 “기존 사업에 미래지향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을 접목시키는 데 조합 활동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리모트컨트롤(RC)용 제트엔진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 드론과는 달리 군용 드론 등 특수목적 드론에는 제트엔진이 적합하기 때문에 협업을 통해 이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엔진이 완성되면 동체 제작 등 2단계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일부 2세 경영인들은 직접 ‘완제품’을 제작하는 데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들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은퇴 경영자들을 만나 자문하고, 제품 출시를 위한 협업팀도 구성한다. 발주 기업의 주문에 맞춘 ‘누룽지 만드는 기계’ ‘돌솥밥 제조기계’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윤정호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장은 “일본에는 최근 소공인들의 가업승계 풍토가 다소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3~4대를 내려오는 기업이 많다”며 “이들이 모노즈쿠리(혼이 담긴 제품 제작)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이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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