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수처법은 반드시 처리될 것"
한국 "끝까지 저지…보수세력 결집"
[ 하헌형/김소현 기자 ]
‘패스트트랙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선거제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대상 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이번주 중대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 당의 출구전략도 얽히고 있다.
민주당, 공수처 설치에 사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관철시키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내년 총선 전에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당내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시간 문제일 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공조를 통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아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 26일 발의를 마친 ‘패스트트랙 4법’ 중 하나인 공수처 설치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부와 여당이 적극 추진해왔다. 민주당은 당초 공수처에 수사권과 공소권을 모두 주는 안(案)을 주장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지정의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이 기소권 부여에 반대 의견을 나타내자 판사, 검사, 경찰 경무관급 이상에 대해서만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민주당 관계자는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소수 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동의한 것도 공수처 설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선거제 개편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뒤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더라도 불리할 게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개혁 입법’의 상징성이 큰 공수처 설치법만 통과돼도 소기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 사이에선 “패스트트랙은 민주당에는 꽃놀이패”라는 얘기도 나왔다.
선거제 개정안 등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범(汎)여권 연대가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민주당(128석)과 바른미래당(28석),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의 총 의석수는 176석이다. 이 중 패스트트랙에 반대해온 10석 안팎의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를 제외해도 국회 재적 절반인 150석을 훌쩍 넘긴다. 다만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할 경우 한국당과의 대립이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회 파행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은 민주당으로서도 부담이다.
한국당, ‘야성 회복’에 보수 결집 기대
한국당은 휴일인 이날도 5일째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한 농성을 이어갔다. 전날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연 한국당은 조를 짜 정개특위 회의장(본청 445호) 앞을 막고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기습 상정에 대비했다. ‘문재인 STOP(정지), 국민이 심판합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전날 집회엔 5만여 명이 참가(한국당 추산)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집회에서 “좌파 정권이 패스트트랙을 이용해 독재의 마지막 퍼즐을 꿰맞추려 하고 있다”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 등을) 민주당의 2중대, 3중대로 만들어 범여권이 의석 과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다음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 의원이 (국회법 위반으로) 전원 고발된다 해도 끝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패스트트랙 표결’을 육탄 저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정치권에선 “이번주를 넘기면서까지 ‘국회 봉쇄 작전’을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미 한국당 의원 18명이 국회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된 만큼 주 중반을 넘어가면서 ‘투쟁 동력’이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한국당은 만약 패스트트랙 지정이 이뤄지더라도 장외 투쟁을 통해 보수층 지지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발판 삼아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 동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당내에선 이번 대치 정국에서 느슨했던 야성(野性)을 회복하고, ‘보수 대통합’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바른미래, 존재감은 부각시켰지만…
바른미래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면서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했으나,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의 반목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조만간 분당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계는 손학규 대표, 김관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퇴진과 동시에 유 의원을 주축으로 한 비상대책위 출범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민의당계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 견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특위 위원 불법 교체’ 논란으로 촉발된 내분을 봉합하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유 의원은 전날 “쉽고 편한 길을 가진 않겠다”며 아직까진 탈당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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