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매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올 들어 크리스찬 디올을 비롯해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별 다른 영향이 없는 풍경이다. 지난해 불경기 속에서도 백화점 매출이 '마(魔)의 30조원 벽'을 돌파한 성장동력 중 한 축은 명품이다. 부유한 소비자들이 지갑을 아낌없이 연 덕이다. 주요 명품업체 실적도 이를 방증한다. 크리스찬 디올을 운영하는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967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뛰었다. 브랜드 인기제품인 양가죽 레이디 디올 미니 백은 400만원이 넘는다.
# 종로3가 인근 음식점들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골목골목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지만 정작 손님으로 붐비는 음식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을지로입구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임대' 문구를 붙이고 문을 닫은 음식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외식산업 통계'에 따르면 외식업 경기지수는 지난해 1분기 69.45에서 4분기 64.20으로 추락했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업황 위축을 뜻한다.
한국경제 성장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이미 역대급인 빈부격차가 한층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험이 본격화된 지난해 되레 궁핍해진 저소득층이 올해 경기 침체 속 한층 쪼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1분기 한국경제 역성장…"상반기 2.3%·올해 2.5% 성장 어렵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후 최저치인 -0.3%(직전 분기 대비)로 추락했다. 한국은행이 네 번 연속 깎아낸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연 2.5% 달성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장 올해 상반기(2.3%) 전망치의 신뢰도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산술적으로 한은의 상반기 전망치 달성을 위해서는 2분기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5%(전분기 대비)에 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가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희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구조적으로 민간소비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2분기 성장률 반등은 한계가 있다"며 "국내 GDP 성장률은 상반기 2.0% 내외에 그칠 전망이고, 7월 한은의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의 추가 하향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지만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한은의 상반기 전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2분기에 1.5% 깜짝 반등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상승요인이 있는 지 상당히 의문"이라며 "5년 평균 성장률이 0.7% 였음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올해 연간 전망도 어둡다. '상저하고' 형세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지만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일로에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노무라금융투자는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1.8%로 내렸다. 앞서 영국계 시장분석기관인 IHS마킷이 제시한 최저치 1.7%에 근접한 수치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을 2.5%에서 2.3%로 낮췄다. 세계경기 둔화의 영향이 반도체 경기를 통해 증폭되면서 국내 경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하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경기부양책에도 국내 경제 성장률은 올해 2.3%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 등도 올해 전망치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소주성' 반작용 맞은 저소득층, '역성장 쇼크' 견뎌낼까
문제는 그동안 진행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악화된 상황에서 '성장률 쇼크'의 타격을 저소득층이 고스란히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4분기 역대 최대 수준인 빈부격차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빈부격차는 통계를 집계한 2003년 후 최악의 수준으로 벌어졌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이 큰 폭으로 쪼그라들고, 고소득층 소득은 늘어난 결과다.
통계청의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득 수준에 따라 전체 가구를 5단계로 나눴을 때 최하위 가구 20%인 1분위 대비 최상위 가구 20%인 5분위의 소득 비율은 역대 4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를 나타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7로 집계됐다. 5분위 가구의 평균소득이 1분위 평균소득보다 5배 이상 높다는 뜻이다.
최하위 가구인 1분위 월평균 소득은 123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7% 깎였다. 2분위 소득은 4.8% 줄었다. 반면 3분위, 4분위 소득은 각각 1.8%, 4.8% 증가했다. 최상위 가구인 5분위 소득은 10.4% 뛴 932만400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이 처음으로 3만달러를 돌파했지만 소득 양극화가 진행되며 저소득층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곤궁해진 것이다.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소득 최하위 가구의 경우 살림이 지난해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6.6%를 차지하는 월소득 100만원 미만 최하위 가구는 지난해 월 109만6000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해당 가구가 전년 대비 교육, 통신, 오락·문화, 음식·숙박 등을 중심으로 지출을 0.9% 줄였지만 적자 살림을 피할 수 없었다.
자영업자 고용비중이 높은 한국경제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의 반작용으로 고용 악화와 저소득 가계의 소득 감소가 심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재정 투입으로 서민가구 소득을 올려 내수시장을 확대시키는 선순환을 도모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취지에 역행한 지표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 방향의 선회 혹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의 빈부격차 확대에는 대내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최근 2년간 누적 29.1% 뛴 최저임금의 여파가 분명히 나타났다고 본다"며 "일자리 감소로 저소득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양산되며 빈부격차가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사회'에 대한 공론화와 최저임금정책의 유턴도 필요하다"며 정책 방향 변화를 제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역시 "현 시점에서 빈부격차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경기가 돌아서야 하는데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복지 정책으로 추세를 돌리기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기가 돌아서기 위해서는 기업투자가 가장 중요하고, 고용이 창출되도록 민간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