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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자연사박물관의 연금술사…그들 손 닿으면 공룡도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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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랜스 그란데 지음 / 김새남 옮김
소소의책 / 460쪽 / 3만8000원



[ 서화동 기자 ]
1990년 8월 12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목장 내 사암 낭떠러지에서 커다란 척추뼈와 다리뼈 등이 발견됐다. 여성 탐험가 수전 핸드릭슨은 육식공룡의 뼈임을 직감했다. 9m 깊이의 실트암과 사암 속에 묻힌 뼈들을 덩어리째 땅에서 분리하는 데만 2주 넘게 걸렸다. 공룡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수(Sue)’로 명명됐다.

6700만 년 만에 땅 위로 나온 수의 앞길은 험난했다. 수가 묻혀 있던 땅의 주인과 발굴 당시 이를 단돈 5000달러에 샀다고 주장하는 블랙힐스지질연구소, 땅이 포함된 인디언보호구역을 관할하는 수(Sioux)족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했다. 게다가 연방정부까지 가세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수를 통째로 압수했다. 여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민형사상 분쟁에 증인으로 불려다닌 끝에 소유권은 땅주인에게 넘어갔고, 1997년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760만달러(약 88억원)에 낙찰됐다. 수의 새로운 주인은 시카고의 필드자연사박물관. 맥도날드와 디즈니가 후원한 덕분이었다.

필드박물관이 12명의 전문가를 동원해 수를 복원하는 데는 3만 시간 이상 걸렸다. 연구 결과 수는 세계 최강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로 판명됐다. 생존 당시 수는 키 4m, 몸길이 13m, 몸무게는 10t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필드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 된 수는 2000년 5월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뒤 16년간 2500만 명이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쥬라기 공원’의 실제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필드박물관의 석좌큐레이터인 랜스 그란데가 쓴 《큐레이터》에는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큐레이터라는 직책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자연사에 입문하게 됐고, 어떤 공부와 훈련 과정을 거쳐 큐레이터로 성장해왔는지뿐만 아니라 필드박물관을 움직여온 다른 큐레이터와 그들의 전문 분야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미국에서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 수집과 전시 기획에 그쳤던 큐레이터의 역할 범위가 새로운 과학지식의 습득과 보급으로 확대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대부분 박물관이 전문 직원에게 전시를 전담하도록 했고, 전시 구성에서 큐레이터는 관련 주제의 전문가로서 개입하는 정도 역할만 하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전시전문가로서보다는 연구자, 과학자로서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1982년부터 큐레이터로 일해온 저자의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미네소타주립대 3학년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던 그가 고생물학에 눈을 돌린 건 친구가 휴가지에서 사다준 5200만 년 전 어류화석 때문이었다. 화석에 홀려버린 그는 같은 대학의 고생물학과 교수를 찾아갔고, 전공을 지질학과 동물학으로 바꿨다. 이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돈 로젠과 개러스 넬슨 아래서 박사 과정을 공부한 그는 1982년 시카고의 필드박물관에 큐레이터로 합류했다.

책에는 그가 와이오밍주 고산 사막지대의 석회암층인 ‘그린리버층 뷰트 화석지’에서 상업적인 화석 채석장과 채석공, 아마추어 화석수집가 등을 끌어들여 화석을 발굴하고 박물관의 소장품을 확보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뷰트의 화석들은 6500만 년 전 백악기의 대멸종 이후 북미지역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됐는지 보여주는 현존 최고의 기록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멕시코, 러시아, 일본에서의 공동 연구 과정도 흥미롭다.

책의 원제는 ‘Curators’다. 저자뿐 아니라 다른 큐레이터들의 모험 가득한 현장 이야기도 소개한다. 필드박물관에는 개미부터 공룡까지 아우르는 전문가가 포진해 있고, 이들은 해저부터 히말라야의 고산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를 탐험하며 인류와 지구의 진화 과정을 찾아내고 해석한다.

생태학과 진화, 버섯류 전문가인 그레그 뮐러, 40만 종이 넘는 속씨식물 전문가인 식물학자 릭 리, 지의류 전문가 토르스텐 럼슈, 남미대륙 식물군과 엘니뇨 현상 전문가인 마이클 딜런, 조류학자 존 베이츠, 운석학 큐레이터 미낙시 와드와와 필립 헥, 공룡시대 이전의 포유류인 디키노돈트 전문가인 켄 앤지엘키, 해양생물학자이자 무척추동물 큐레이터인 재닛 보이트, ‘스파이더우먼’으로 불리는 곤충학 큐레이터 페트라 시어왈드, 개미 큐레이터 코리 모로…. 각 분야 큐레이터들의 열정 가득한 여정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1894년 개관한 필드박물관은 2700만 점의 표본을 소장한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의 하나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우리로선 이래저래 부러울 수밖에 없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이 참 멀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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