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85) 동원그룹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16일 선언했다.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회사를 이끌어 온지 50년 만이다.
김 회장은 이날 오전 경기 이천의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동원이 창립된 1969년은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딘 해로, 선진국이 달에 도전할 때 동원은 바다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며 "하지만 열심히 땀을 흘리고 힘을 모은 결과 동원은 1, 2, 3차 산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을 영위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했다.
이어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럴수록 인간은 성장하니까'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해왔다"며 "동원의 자랑스러운 50년을 만들 수 있도록 바탕이 돼 준 우리나라와 사회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기업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원의 창업정신은 '성실한 기업 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었고, 기업 비전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필요기업'"이라며 "앞으로도 이 다짐을 잊지 말고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승자의 길이라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회장은 "오늘날의 급격한 변화는 과거를 자랑하고 있을 여유가 없으며, 기업 경영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받고 이겨내야 한다"며 "새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동원이 가진 잠재력과 협동정신이 발휘되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기념사 말미에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하고자 한다"며 "역량을 십분 발휘해 더욱 찬란한 동원의 새 역사를 써달라"고 했다.
김 회장의 퇴진 선언은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내린 결단이라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특히 평소 "기업은 환경적응업이다"라는 소신을 밝히며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김 회장은 동원의 변화와 혁신을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최근 인공지능(AI)에 관심을 갖고 이를 사업과 연결하는 방안은 물론 글로벌 기업경영의 화두가 되고 있는 RPA(단순 업무를 로봇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화하는 솔루션)를 경영에 도입하는 것도 직접 진두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에서 물러난 후 김 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에만 조언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또한 재계 원로로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퇴진 이후 동원그룹의 경영은 큰 틀에서 변화가 없을 거란 전망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인 엔터프라이즈가 그룹의 전략과 방향을 잡고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독립경영을 하는 기존 경영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창업 후 50년 동안 치열하게 기업경영에만 몰두했고 정도경영의 길만을 걸어왔다. 그는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업인의 성실과 책임을 강조했다.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던 해에는 공식석상에 일절 나타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했던 일화도 있다. 또한 1998년 IMF외환위기를 비롯, 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도 자진 납부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 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히며 주요신문들에서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정도경영과 원칙은 자녀교육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통찰력이 생기고, 잘못된 정보에 속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어릴적부터 경영수업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을 마치자,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을 약 6개월 정도 태웠다. 또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은 입사 후 창원의 참치캔 제조공장에서 생산직과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가장 바쁜 현장부터 경험시켰다. 두 아들 모두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1년이 넘어 임원으로 승진했다.
또한 김 회장이 성실한 기업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납세와 고용창출 그리고 인재육성이었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양어선 선장이던 시절부터 고향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회장은 창업 10년인 1979년에 자신의 지분 10%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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