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쓴맛 본 아모레퍼시픽
'20대 여성' 명확한 소비층 설정
저가화장품 에뛰드하우스로 승부
[ 민지혜 기자 ]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은 일본에서 ‘쓴맛’을 본 적이 있다. 2006년 일본 시장에 진출해 오사카 한큐백화점,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백화점 등 최고급 백화점에 입점했다. 2008년 5월엔 이세탄백화점이 선정하는 ‘올해의 그랑프리상’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심리가 악화됐고, 고가 해외 브랜드 화장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아모레퍼시픽은 매장을 하나씩 줄였고, 2014년 일본에서 철수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이 과정에서 저가 화장품 브랜드 진출을 추진했다. 2011년 ‘에뛰드하우스’로 승부를 띄웠다.
명확한 타깃 설정…2016년부터 반전
에뛰드하우스가 일본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도 소비심리는 크게 좋지 않았다. 주요 거점에 매장을 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즉각 전략을 수정했다. 타깃 소비자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에 맞는 핵심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점포도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클러스터 형태로 집중적으로 출점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16년이다. 전년보다 32% 매출이 늘었다. 2017년에도 34%, 지난해 역시 30% 증가해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후폭풍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에뛰드의 국내 실적이 악화됐지만, 일본 시장에선 크게 성장했다.
에뛰드하우스가 일본에서 성공한 첫 번째 요인은 ‘명확한 타깃 설정’이었다. 국내에서는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에뛰드하우스 제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연령대별로 사용하는 화장품 가격대와 브랜드가 뚜렷했다. 에뛰드하우스는 20대 초중반의 여성으로 타깃을 좁혔다. 핵심 상품도 이들이 좋아하는 ‘귀엽고 톡톡 튀는 디자인의 선명한 색조 제품’으로 설정했다.
2017년 선보인 ‘원더 펀 파크 컬렉션’은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출시 직후부터 일본에서 히트한 대표적인 사례다. 블러셔인 ‘원더 펀 파크 캔디 치크’와 광채를 표현하는 ‘원더 펀 파크 캔디 하이라이터’는 국내보다 두 배나 많이 판매됐다. 아이스크림 모양의 립 제품 ‘디어 달링 아이스크림 틴트’는 ‘장난감 같은 틴트’라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클러스터’ 점포 전략도 한몫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점포 전략의 변경이었다. 일본 진출 초기엔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교토 등 거점도시에 하나씩 매장을 냈다. 대표 매장을 열면 인근에 사는 소비자들이 그쪽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대 일본인 여성들이 자주 찾는 핵심 상권은 따로 있었다. 도쿄의 긴자, 하라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등 젊은 층이 많이 오가는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같은 하라주쿠 지역 내에서 단독매장 한 곳, 라포레 쇼핑몰 한 곳 등 여러 매장을 열기도 했다. ‘클러스터’ 전략이었다. 타깃 소비자들이 많이 모이는 핵심 상권에 집중적으로 군집 매장을 여는 형태다. 도시별로 하나씩 매장을 여는 것보다 인근 상권으로 순차적으로 확산하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현재 에뛰드하우스의 30개 일본 매장 중 절반가량이 도쿄 핵심 상권에 배치돼 있다.
당시 일본 시장조사를 진두지휘했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배동현 사장은 “우리 예상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일본 소비자들이 에뛰드하우스에 지갑을 열게 된 것은 현지화한 제품과 명확한 타기팅, 그에 맞는 점포 전략 때문이었다”며 “일본에 진출한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실패를 맛본 상황에서 에뛰드하우스가 낸 성과는 다른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데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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