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70~80년대의 가사·선율 닮은
인디밴드 음악 최근 크게 유행
[ 김희경 기자 ]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남몰래 펼쳐보아요.”
1970~1980년대 노래 가사 같다. 마음을 숨기지도 포장하지도 않는 순수함, 이를 수줍게 꺼내 보이는 정갈한 표현이 그렇다. 청춘의 사랑은 봉긋이 피어나지만 또 생각보다 쉬이 지기도 하는 법. 이 아름다운 열병 또한 에두르지 않고 고스란히 담는다. “피고 지는 마음을 알아요/다시 돌아온 계절도 난 한동안 새 활짝 피었다 질래.” 창법은 왠지 가수 조덕배와 비슷하고, 감성은 미국 밴드 비치 보이스와 맞닿은 듯하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디밴드 ‘잔나비’(사진)가 주는 느낌이다. 노래는 지난달 발표한 앨범 ‘전설’의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다. 옛날풍의 가사에 잔나비란 이름까지 들으면 중년 밴드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의 나이는 모두 27세. 원숭이띠 다섯 명이 모여서 ‘원숭이’란 뜻의 순우리말 ‘잔나비’를 밴드 이름으로 내걸었다. 잔나비의 돌풍은 거세다. 나오자마자 주요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고, 한 달 넘게 아이돌 틈을 비집고 10위권에 머물러 있다. 처음으로 연 전국투어 공연도 전석 매진됐다. 잔나비엔 ‘한국의 비틀스’ ‘한국의 비치 보이스’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중년이 아니다. 20~30대가 이들의 음악을 차트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제 청춘들도 ‘쿨(cool)’과 ‘힙(hip)’에 지친 걸까. 거의 접해보지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1970~1980년대 감성에 심취하고 열광한다. “쿨과 힙이 싫다”며 그때의 음악을 선보이는 잔나비처럼 말이다. 젊은 세대는 감정을 포장하는 데 길들어왔다. 미련이 남아도 안 그런 듯 쿨한 척해야 했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세련된 사람인 것처럼 힙하게 행동했다. 창작자도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기존의 것보다 더 새롭고 감각적인 콘텐츠를 내놔야 했다. 잔나비를 비롯해 이를 역행하고 있는 ‘뉴트로(과거의 것을 재해석)’ 열풍은 단순히 회귀적인 성격을 띠는 게 아니다. 청춘들이 그동안 감성의 허상 위에 쌓아올린 것을 무너뜨리고 재편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뉴트로 열풍은 시티팝(city pop)의 인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도시에서 흥하는 음악’을 일컫는 시티팝은 1970~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장르다. 국내에선 1980~1990년대 확산됐으며 전자 사운드가 일부 가미돼 청량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 김현철의 ‘왜 그래’ 등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 유튜버 ‘서울시티비트’가 김현철 등 199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믹스한 동영상은 조회수 18만 뷰를 달성했다. 이를 즐기는 사람도 대부분 20~30대다.
‘뉴트로’란 용어도 이 현상을 설명하기에 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왠지 쿨하고 힙해 보이니까. 하지만 레트로(복고) 열풍과는 다른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가 자주 사용되곤 한다. 복고가 중장년층이 과거의 향수에 젖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젊은 층이 경험한 적 없는 옛것에 이끌리는 현상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뉴트로 현상에 대해 “모자람이 주는 충족감, 불완전함이 지니는 미학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을 듣고 있으면 밋밋하지만 솔직한 표현에 미소가 떠오른다.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더냐/아버지 내게 물으시고/제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일상의 한순간과 머릿속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쉽고 편안하다. ‘보편적 감성’이란 뜬구름 같던 말이 이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살고 있든 누구나 경험하고 느꼈을 감정 말이다. 우리는 뉴트로 열풍에 기대 그 감정에 닿는 법을 다시 배워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온갖 영어 단어를 사용해가며 배배 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곧장 뻗어가는 법 말이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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