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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임러그룹 CEO 디터 체체…위기의 벤츠, 제2 전성기 개척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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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CEO & Issue focus

'노인들이 타는 車'에서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으로



[ 정연일 기자 ] 지난해 9월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거물급 인사의 때아닌 은퇴 소식에 들썩였다. 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인 다임러그룹의 디터 체체 최고경영자(CEO)가 당초 2019년 12월로 예정된 임기를 7개월 당겨 5월에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CEO에 올라 10년이 넘게 벤츠 수장을 맡아온 그가 떠난다는 소식에 시장은 동요했다.

체체 CEO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벤츠를 환골탈태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벤츠는 독일 명품 자동차 3사 중에서도 가장 선망받는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벤츠는 ‘노인들이나 타는 촌스러운 자동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오랜 기간 혁신에 실패하면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독일 명품 3사 중 가장 저조한 판매액을 보였다.

하지만 체체가 CEO에 부임한 후 벤츠 고유의 고급스러움에 젊은 디자인 감각을 더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체체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커다란 콧수염을 앞세운 친숙한 이미지를 통해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엔지니어 출신 20년 장수 CEO

공학 박사 출신인 체체 CEO는 20대 초반이던 1976년 다임러그룹의 전신인 다임러벤츠에 입사했다. 2000년 다임러가 합병한 크라이슬러의 CEO에 임명되기 전까지 약 25년간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후 관리자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2006년 다임러그룹의 총괄 CEO에 올랐다. 이후 지금까지 CEO 직책을 무려 2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다임러벤츠의 초대 회장인 빌헬름 키셀 이후 가장 오랜 기간 그룹 사령탑을 지키고 있다.

체체가 그룹 CEO로 부임하던 당시 다임러그룹은 위기 상황이었다. 전임 CEO였던 위르겐 쉬렘프가 미국 크라이슬러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그룹 가치가 500억유로(약 64조1415억원)가량 급락한 상황이었다. 체체가 CEO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크라이슬러의 재분사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000년대 초반 다임러그룹은 독일 대표 자동차 기업이라는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BMW는 물론 아우디에도 실적이 밀리는 상태였다. 순이익은 물론 판매량도 이들 중 가장 적었다. 체체의 노력은 그가 CEO에 오른 지 8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13년 BMW를 판매량에서 앞지른 데 이어 2015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아우디 판매량을 넘어섰다.

‘노땅들의 차’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체체는 부진한 실적을 타개하기 위해 벤츠의 이미지 전반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벤츠를 외면하는 젊은 층을 끌어모으기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송두리째 바꿔나갔다. 먼저 노인들이 타는 차로 여겨졌던 벤츠 A클래스를 젊은 스타일의 해치백 형태로 바꾸는 파격을 시도했다. 프랑스 르노와 협력해 소형 해치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당시 30대의 젊은 디자이너 고든 바그너를 벤츠 수석디자이너에 앉힌 것도 체체 CEO의 결정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계가 벤츠의 놀라운 변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벤츠에 관심을 두지 않던 젊은 여성 고객들까지 벤츠의 새로운 디자인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소형 자동차 라인업을 대폭 강화시킨 벤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어필하는 브랜드로 변모해갔다. 체체 CEO 부임 후 유럽 내 벤츠 자동차 구매자의 평균 연령이 이전보다 무려 13살 낮아졌다.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던 최고급 브랜드 마이바흐를 과감하게 정리한 것도 체체였다. 마이바흐를 벤츠 최상위 라인인 S클래스에 흡수시켜 새롭게 출시한 결과 S클래스의 지지층이 더욱 확고해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벤츠는 F1에서 성공을 거두며 스포츠카 마니아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도 성공했다.

체체 자신도 엄격할 것 같은 인상에서 벗어나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모터쇼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등장해 직접 고객을 맞았다. 자신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며 북미 시장에서도 벤츠의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정공법으로 위기 극복

체체 CEO의 노력으로 수익성이 개선되기 시작하던 2015년 벤츠는 예상치 못 한 큰 위기를 다시 맞는다. 당시 유럽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던 독일차 디젤게이트에 벤츠도 연루됐다. 벤츠는 다른 독일 자동차 회사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77만 대의 디젤차를 리콜해야 했다. 당시 벤츠는 프로그램 결함에 따른 리콜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벤츠 측에서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조작을 가했다고 밝혔다.

체체 CEO는 이후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2017년에만 300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유럽연합(EU)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벌금을 물게 되자 가장 먼저 자백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당시 체체 CEO의 정공법 결단이 없었더라면 벤츠가 최소 10조원의 벌금을 추가로 물게 됐을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다.

체체 CEO는 작년 9월 은퇴를 발표한 이후에도 벤츠의 미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2월 경쟁사인 BMW와 전기차·자율주행차·차량공유 서비스 등 미래 먹거리 사업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BMW와의 합작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시대 흐름이 변화하면서 경쟁사 간 협업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체체 CEO는 다음달 퇴임해 2년간 휴지기를 가진 뒤 2021년 중순부터 다임러그룹 감독위원회 의장직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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