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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의 글로벌 Edge] 유럽에 번지는 '잃어버린 20년'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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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공포가 다시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유로존이다. 10년 전 미국을 떨게 했던 그 공포다. 지난달 ING는 유로존 경제가 일본처럼 상당한 규모의 양적완화를 하고도 저성장과 저물가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유로존의 일본화(Japanification)’가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단기 금리와 인구 변화 등을 감안한 결과다. 중국 경제도 일본처럼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미국의 일본화 우려는 훨씬 심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일본과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을 비판했던 벤 버냉키 전 중앙은행(Fed) 총재가 나중에 양적완화와 초저금리로 미국을 살린 건 아이러니다.

日 장기 불황, 디지털 지체 때문

정작 잃어버린 20년을 낳은 본질에 대해선 어떤 학자들도 단언하지 못한다. 일본의 초고령화나 인구감소, 정부 거시경제 정책 실패 등으로 인한 저성장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단지 총수요부족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초저금리하에서 기업 부실처리와 산업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부실기업과 업종이 확산되는 구조라는 설명도 있다.

이보다 일본 경제를 구성하는 산업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일본 경제학자 고사이 유타카는 “금융이나 거시정책의 잘못이 아니라 산업 자체의 문제가 침체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케다 노부오는 아예 일본 디플레는 1980년대부터 전개된 정보통신혁명의 지체 때문이라고 못 박는다. 전통 제조업이 정보통신으로 넘어가는 조류에 일본이 편승하지 못하고 미국과 한국 등에 뒤처졌다는 것이다. 1988년엔 세계 톱 20개 기업(시가총액 기준) 중 14개 기업이 일본 기업이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1개 기업도 없었다. 시총 상위 기업 대부분이 디지털 기업임은 물론이다.

20세기 세계의 제조업을 이끌어왔던 게 일본이다. 정부가 주도하고 산업을 규제하며 기업들을 독려한 게 그 핵심이다. 자본 형성도 그렇게 이뤄졌다. 중후장대한 산업에 딱 들어맞는 구조다. 하지만 디지털이 주도 개념으로 부상하면서 일본 경제와 사회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이며 혁신적인 디지털 구조에서 ‘폐쇄 사회’ 일본은 갈 길을 잃었다. 기술 제일의 일본을 뽐내면서 모듈화나 초고정밀기술 등에 집중했다. 디지털 도입이 30년 지났지만 일본에선 아직도 전자식 신용카드가 화두가 되고 있다.

혁신·적응못하면 언제든 침체

고바야시 요시미쓰 미쓰비시케미칼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고령화와 디플레 마인드 확산이 지적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기업들이 의지가 있어 세계를 석권할 만한 기술과 혁신을 낳는다면 저출산은 사회 문제이지 경제 문제는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 경제의 침체는 결국 기업의 현실 안주와 만족감이 혁신을 낳지 못하고 산업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도 일본처럼 디지털화에 늦은 제조 중심 기업들이 많다. 새로운 도전을 찾기 힘들다는 점도 비슷하다.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하고픈 늙은 노스탤지어만 가득하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이를 이용한다. 한국에서도 디플레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형 장기불황 구조를 답습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는 신산업에 대한 개념 설계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그 속에서 정치 리스크만 커져간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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