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의 ‘벌집계좌’ 거래를 금지시키는 법제화가 추진된다. 200곳 이상으로 추산되는 국내 거래소를 몇 군데만 남기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거래소들의 벌집계좌 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므로 과도한 처사란 지적도 제기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나인빗과 비트소닉이 각각 시중은행으로부터 거래정지 통보를 받았다. 벌집계좌 거래가 문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벌집계좌란 거래소 법인계좌 아래에 여러 거래자들의 개인계좌를 두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중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곳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4곳뿐이다. 때문에 나머지 중소 거래소 상당수는 벌집계좌로 거래를 해왔다. 일종의 꼼수지만 가상계좌 발급이 막힌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는 게 거래소들의 항변이다.
벌집계좌는 왜 문제가 될까. 벌집계좌로 거래되는 돈은 법적으로 ‘거래소 자산’이다. 때문에 거래소가 고객 요구에도 출금을 해주지 않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벌집계좌를 운영하는 거래소 일부가 실제로 이같은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례가 적지 않다.
시중은행의 이번 거래소 벌집계좌 거래 정지 통보 역시 이같은 우려를 반영한 것. 그 연장선상에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있다. 국회에 제출돼 있는 특금법 개정안은 벌집계좌 금지, 은행의 벌집계좌 회수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해당 내용 때문에 특금법 개정시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4곳을 제외하면 모조리 문 닫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거래소들은 내다봤다. 나인빗과 비트소닉 사례가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현재는 엄밀히 따져 벌집계좌라고 해도 회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땅찮다. 관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벌집계좌 그 자체로는 불법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문제 있는 곳 때문에 거래소 전체를 ‘정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한 관계자는 “실명확인 가상계좌가 막혀있는 데다 법원이 불법도 아니라고 판결하니 어쩔 수 없이 벌집계좌를 사용하는 거래소도 있다. 개중엔 정부 보안 적격 판정을 받은 정상적 거래소 또한 많다”면서 “선후가 바뀌었다.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적격 거래소를 인가해주는 노력이 먼저고, 그 뒤에 벌집계좌를 악용하는 거래소에 철퇴를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구태언 린-테크앤로 변호사는 “쇼핑몰이나 이커머스도 벌집계좌 형태로 운영된다. 벌집계좌라 해서 금융실명제를 어긴 것은 아니란 얘기”라며 “정확히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벌집계좌를 문제 삼은 것이다. 자금세탁(AML)이나 실명확인(KYC) 문제라면 벌집계좌를 타깃으로 할 게 아니라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열어주는 방법도 있다”고 꼬집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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