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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ㅣ세월호 슬픔 담은 '생일'…그렇게 기억하고, 축하하고,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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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리뷰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어른들 중 이 날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전국민이 TV 실시간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는 와중에 잘못된 구조 대응으로 304명이 사망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고로 고등학생이었던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담담하게 그들을 기억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극적인 사건 따윈 없다. 여기에 모두가 다 아는 소재를 영화로 끌여들었다. 이 와중에 극의 중심을 잡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힘은 궁금증이었다.

정일(설경구 분)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장면으로 '생일'은 시작한다. 그곳에서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가족들이 이사간 집도 몰랐다. 아내 순남(전도연 분)도 그가 벨을 눌러도 지켜보기만 할 뿐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찾아온 정일에게 순남은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다"며 이혼 서류를 건넸다.

어색하긴 딸 예솔(김보민 분)이도 마찬가지였다. 정일이 한국을 떠난 5년 만에 부쩍 자란 딸은 아빠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쉽게 곁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심지어 집 비밀번호도 정일이 보지 못하게 손으로 가리며 눌렀다.

삐걱대는 관계의 중심엔 수호(윤찬영 분)이 부재가 있었다. 왜 정일은 수호가 떠날 때에도 돌아오지 못했을까. '생일'을 이끈 첫 번째 궁금증이다.

정일이 서서히 순남, 예솔에게 다가서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아갔지만, 그들은 계속 아팠다. 순남은 슬픔을 억누르며 웃음짓는 다른 유족들에게 "소풍 왔냐"고 독설을 하고, 예솔이는 바다에 사는 생선도 싫어하고, 집안 욕조 물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병이 깊었다. 정일 역시 아들의 방만 봐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에게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생일파티를 해주고 있다"며 "곧 있으면 올 수호의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다"면서 비영리단체 사람들이 찾아왔다. "보상금은 얼마나 받았냐", "그 정도 받았으면 됐지 않았냐"고 눈초리를 주는 사람들로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던 순남은 "나라에서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꿍꿍이냐"고 그들을 배척했다. 그렇지만 "수호에게 해준게 없어서, 생일파티를 해줬으면 한다"는 정일의 설득에 함께 파티에 참석했다.

생일 파티에서 그날 이후 순남을 피해 다녔던 수호의 단짝 친구 성준(성유빈 분), 수호에게 남다른 부채의식을 갖을 수 밖에 없었던 은빈(권소현 분)의 비밀도 공개됐다. 30분 남짓의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이 장면을 위해 꼬박 이틀을 썼다.

이종언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부분이기도 하다. 이종언 감독은 2015년 여름 안산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유족들이 쉴 수 있고, 떠난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유가족과 희생자 친구들을 모아 생일 모임도 주선했다. 영화에선 단체명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곳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것.

담담하지만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닮았다. 이종언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시'에서 연출부 스태프로 몸담았다. '생일'의 제작 역시 이창동 감독의 동생인 이준동 대표가 운영하는 나우필름에서 맡았다.

'밀양'에 이어 이종언 감독과 다시 만난 전도연은 "그땐 스크립터라 제 눈도 못마주쳤다"며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감독님'이라는 말이 나왔다"며 이종언 감독의 능력을 칭찬했다.

또 전도연은 "'생일'은 정치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거나, 뭔가를 전하려는 영화가 아니다"며 "그 일을 겪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더 좋았고, 그래서 용기를 내 출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촘촘하게 쌓인 이야기 속에 전도연, 설경구의 연기가 힘을 더했다.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을 표현하며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던 전도연은 "그땐 제가 엄마가 아니어서 감정을 만드는게 어려웠다"며 "지금은 저에게도 딸이 있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그때와 달라진 부분을 전했다.

설경구 역시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을 갖고 살아가는 정일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테지만, 더 아파할 가족을 위해 입 밖으로 터트리기보단 속으로 삼키는 아빠의 모습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4월 3일 개봉. 120분. 전체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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