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장기이식 수술 50년
어떻게 발전했나
故 이용각 명동 성모병원 교수
1969년 국내 첫 신장이식수술
[ 이지현 기자 ]
고(故) 이용각 명동 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는 1969년 3월 미국 시카고의 한 의료기관으로부터 신장이식 수술이 가능한지 묻는 편지를 받았다. 6·25전쟁 당시 미군 군의관으로 근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휴스턴 베일러 의대에서 혈관 수술 기술을 익히고 돌아왔다. 이 교수는 주저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한국 의사는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만성신부전을 앓던 재미동포 정재화 씨는 3월 25일 수술대에 올랐다. 모친이 신장을 기증하며 두 번째 생명을 줬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신부전으로 꽉 막혔던 소변이 콸콸 나왔다. 당시 임상강사(펠로)로 수술에 참여한 김인철 한국관광대학 노인전문병원장(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은 “외과의사라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 모두 두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1969년 첫 이식 후 50년
“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 오늘 가끔 한두 곳에서 되다가 내일이면 보편화된다.” 간이식 수술 창시자인 미국 토머스 스타즐 교수의 말이다. 국내 장기이식 수술도 마찬가지였다. 미국(1954년), 일본(1959년)보다 늦었지만 발전 속도는 빨랐다. 이 교수팀이 포문을 연 뒤 같은 해 서울대병원 등에서 신장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조직 적합성 검사가 개발되지 않아 혈액형만 맞으면 수술했다. 면역억제 기술도 부족했다. 1972년 스위스에서 이식 거부 반응을 줄이는 억제제가 개발된 뒤 수술도 발전했다. 곽진영 한양대병원 교수팀은 1979년 1월 뇌졸중으로 뇌사에 빠진 50대 남성의 신장을 떼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뇌사 정의조차 없던 때다. 1988년 간이식 수술을 처음 한 김수태 서울대병원 교수팀도 마찬가지였다. “수술이 잘못되면 쇠고랑을 차겠다”며 원장을 설득해 10시간 넘는 대수술을 했다. 아시아 첫 간이식 수술이었다.
이후 이식 수술은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송명근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1992년 11월 뇌사자 심장으로 생명을 살렸다. 폐·소장 등으로 이식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김인철 원장은 “독수리와 같은 눈(eagle’s eye), 사자와 같은 가슴(lion’s heart), 여성과 같은 섬세한 손(lady’s hand)은 외과의사의 덕목으로 꼽히는 것들”이라며 “이런 자세로 한국 의학을 발전시켜왔다”고 했다.
미국서 배운 수술 기술 세계에 전파
초창기 한국 의사들은 미국에서 수술 기술을 배웠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950년대 미국 의료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미국, 유럽 의사가 한국을 찾는다. 한국 의사들이 수술 한계를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인구 100만 명당 뇌사 장기 기증자는 한국이 9.95명으로 스페인(46.9명), 미국(31.9명) 등에 비해 턱없이 적다. 산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생체 수술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교수팀은 2000년 살아있는 기증자 두 명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세계 첫 기록이다. 외과의사 사이에서 꿈의 수술로 불린다.
면역억제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간이식 수술, 혈액형이 다른 환자 간이식 수술 등도 한국이 세계 기술을 이끌고 있다. 기증자의 삶의 질도 높이고 있다. 서경석 서울대병원 교수팀은 2007년 기증자의 배를 열지 않고 복강경으로 간우엽을 떼어내는 수술을 세계에서 처음 성공했다. 이식 수술 성공률은 세계 최고다. 국내 첫 신장이식 수술을 한 서울성모병원의 이식 신장 생존율은 92%다. 간이식 성공률은 95%로, 미국 피츠버그 의대(82%)보다 앞선다.
한국 의사들의 도전은 이종 장기 이식수술로 이어지고 있다. 김미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올해 상반기 무균돼지의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 수술이 이뤄지면 세계보건기구(WHO) 인증을 받는 첫 수술이 된다. 서울대 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올해 하반기 무균돼지의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할 계획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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