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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배당은 진영 싸움의 소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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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확대 요구가 진보적이란 인식은 잘못
배당 논의는 지표·실적으로 이뤄져야

유창재 마켓인사이트부 차장



[ 유창재 기자 ] 기업 가치를 매기는 방식 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게 현금흐름할인법(DCF)이다. 해당 기업에서 앞으로 발생할 현금흐름을 예측한 뒤 그 현재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기업가치 산정에서 현금흐름은 왜 중요할까? 미래의 현금은 바로 배당의 재원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투자자가 회사로부터 궁극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현금은 배당이다.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배당에 대한 기대치가 기업가치, 즉 주가의 기초가 되는 이유다. ‘주식 투자는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지 배당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는 일부 펀드매니저의 주장은 그래서 이론적 설득력이 부족하다.

올해 주총 시즌엔 유독 배당이 화제다. ‘쌓아놓은 현금을 배당(혹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으로 주주들에게 돌려달라’는 요구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면서 일부 기업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반면 소수 주주 중에서도 ‘벌어놓은 현금을 배당으로 나눠주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이 없어진다’며 과도한 배당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누구 말이 옳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즘 말로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경영진이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재투자해 주주들이 요구하는 수익률(자본비용) 이상의 수익(자기자본이익률·ROE)을 올릴 수 있다면 배당을 하지 않는 것이 주가에 긍정적이다. 반대로 현금을 재투자해봤자 요구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거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면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주는 게 주주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ROE와 요구수익률 간의 관계는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나타난다. ROE가 요구수익률보다 높으면 PBR이 1보다 높게 형성되고, 반대면 1보다 낮아진다. 어떤 기업의 PBR이 1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주주들이 회사에 요구하는 수익률보다 낮다는 뜻이다. 따라서 PBR이 1 미만인 기업의 경영진은 ‘이익률 낮은 사업에 현금을 재투자하지 말고 배당으로 돌려달라’는 주주들의 요구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적어도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 계획이라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이익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나 분명한 미래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에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는 건 기업가치에 긍정적이지 않다. 시가총액이 8250억달러(약 930조원)에 달하는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이 창사 이래 한번도 배당하지 않아도 투자자들의 불만이 크지 않은 이유다. 알파벳의 PBR은 4.6배가 넘는다.

어떻게 보면 쉽고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한 이유는 기업 재무 용어이자 투자 용어인 배당이 마치 진영 싸움의 소재가 된 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저배당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고, 주주 행동주의가 주식시장의 핵심 테마로 떠오르면서다.

스튜어드십코드가 마치 이번 정권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배당 확대를 요구하면 진보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적(친기업적)이라는 인식마저 생겨나고 있다. 과거엔 배당을 많이 하면 재벌들이 욕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배당도 정치·사회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투자는 투자일 뿐이다. 정치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다. 기업과 투자자는 지표와 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뿐이다. 배당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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