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20일 "한국의 금융불균형 누증 속도가 둔화됐으나 '안전지대'에 다다랐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반적인 거시경제 상황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의 레버리지(부채) 쏠림 추이 등에 비춰 금융불균형 누증 속도가 느려졌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금융불균형의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에 '안전지대'에 왔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조절을 해나가면 큰 문제없이 조절되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금융불균형이 언제쯤 안전지대에 도달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국은 GDP 대비 비금융기관의 금융자산(부채)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금융불균형 누증 가능성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이 위원은 설명했다. 한국의 비금융기관 부채는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금융산업이 발전한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도 중간 수준에 달한다. 반면 비거주자 자본과 거주자의 해외자본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란 점을 짚었다.
특히 최근 몇년간 경제주체들의 레버리지(자산 대비 부채) 확대가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중반 당시 주택 실질 수요를 나타내는 전세가격이 하락한 후 주택 매매가격이 뒤따라 떨어진 데 비춰 최근 2~3년간 전셋값 약세를 유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대출뿐 아니라 보증, 금융상품, 직접금융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금융기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아졌다"며 "레버리지를 통한 투자비용이 부동산 소유로 인한 실질 혜택의 값을 웃돌게 되면 해당 경제주체들에게는 재정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대한 과잉투자는 공급이 제한적인 서울 지역에서는 가격 재조정으로, 공급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방에서는 건설투자 확대에 따른 공실률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글로벌 환경에 함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를 중요한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꼽았다. 이 위원은 "미국(미국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올렸으니 한은도 올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변수를 다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에 대해 내린 "성장 둔화와 고용 부진, 양극화 등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이 위원은 "구조적인 개혁을 짚은 점은 IMF 뿐 아니라 다른 기관도 공통적으로 내놓은 의견이고, 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재정지출을 늘리고 완화적인 통화정책 펼치는 등의 IMF가 제안한 경제정책에 대해 이 위원은 "평가 하지 않겠다"고 함구했다.
앞서 IMF는 한국 경제에 대해 "기준금리를 낮춘다고 해서 심각한 자본유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주문한 바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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