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말을 아끼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미국시간 14일 밤) 기자회견을 통해 핵·미사일 실험 재개와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현안에 바로바로 대응하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은 다각도로 볼 수 있다. 일단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판이 깨지는 극단적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상황 관리’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 섣부른 맞대응으로 파장을 키우기보다는 북한의 정확한 속셈을 파악해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최선희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협상 결렬 책임자’로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를 치켜세우며 ‘톱다운’ 협상 여지를 열어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는데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은 북한에 대한 ‘무언의 경고’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재개, 비핵화 협상 중단 등 ‘벼랑끝 전술’을 꺼내든 상황에서 북한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수 있다. 특히 지난달 27~28일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관이 보다 현실적으로 바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제재완화를 맞바꾸는 ‘빅딜(일괄타결)’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핵심 대북제재 5건을 맞바꾸는 방안을 고집했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 가기 전부터 비핵화 협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과 외부의 우려가 크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이 감지됐을 때도 상당히 절제된 반응을 내놨다. 그는 지난 6,7,8일 사흘 연속 “사실이라면 실망할 것”,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재개하면 실망할 것”이라며 북한의 의도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대처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을 자제하는 것과 달리 하노이 회담 때 배석했던 참모진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17일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북한의)미사일 실험 재개는 일종의 신뢰 위반으로 간주될 것”이라면서도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마주 앉을 수 있다고 예측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방송된 뉴욕의 AM970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최선희 의 기자회견에 대해 “도움이 안 되는 발언”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위협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최선희의 기자회견에 대해 “그는 협상이 확실히 계속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평가했다. 최선희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측 입장을 ‘강도 같은 태도’라고 비판한데 대해서도 “내가 (과거) 방북했을 때도 ‘강도 같다’고 불린 기억이 나는데 이후로 우리는 아주 전문적인 대화를 계속했다”며 “우리가 계속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한다”고 했다.
참모진들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대처하되, 협상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