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당국이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디지털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국 인식이 변하면 가상화폐의 성격을 명확히 해 결과적으로 규제 완화와 산업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제이 클레이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은 최근 서신을 통해 "암호화폐는 증권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콜로라도주에서는 '콜로라도 디지털 토큰 법안'이 통과돼 암호화폐를 주 증권법에서 제외시켰다. 헤스터 피어스 SEC 의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난 11일 "암호화폐 산업은 자율규제를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간주할지 여부는 업계에서 중요 관심사다.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인식되면 기존 증권법 영향을 받아 각종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SEC는 2017년 7월엔 암호화폐에 증권법을 적용해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작년 3월엔 "증권으로 간주되는 토큰을 암호화폐 거래소 내에서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거래소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SEC의 시각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윌리엄 힌먼 SEC 기업금융국장이 "이더리움은 증권이 아니며 SEC 규제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당시 클레이튼 의장은 "힌먼 국장의 개인적 발언"이라며 규제당국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처럼 엇갈린 입장에 혼선이 일자 테드 버드 공화당 의원 등으로 부터 SEC의 입장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제기됐고, 클레이튼 의장이 "모든 디지털 자산(암호화폐)을 증권 거래로 볼 수 없고, 암호화폐가 증권이 아니라는 힌먼 국장의 분석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밝힌 것이다.
제도권 위주로 급변하는 암호화폐 시장 상황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술(IT) 및 금융 관련 대기업들이 시장 진출을 시작하자 규제완화에 힘이 실린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스타벅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수의 업체들과 손잡고 암호화폐 거래소 '백트'를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금융공룡 피델리티와 글로벌 IT 기업 IBM도 최근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위탁 서비스에 나섰다.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는 기관투자자와 고액투자자들을 위한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을 검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갤럭시 S10에 '삼성 블록체인 월렛' 기능을 탑재하는 등 블록체인 기반 분산형 애플리케이션(DApp) 생태계 구축을 시작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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