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워크숍서 기조강연
"10개 기업 자산이 GDP의 80%
사익추구 몰두…경제발전 저해"
[ 이태훈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사진)이 해외 경쟁당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연설문에서 “한국 재벌이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을 장악했다”고 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12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리는 ‘제23회 국제경쟁정책 워크숍’에 참석해 기조 강연을 한다. 이 워크숍은 공정위가 개발도상국에 경쟁법 집행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1996년부터 매년 여는 행사다.
공정위는 11일 김 위원장의 강연 자료를 사전 배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6쪽짜리 강연문에서 한국의 경쟁법 현황과 함께 재벌정책을 2쪽에 걸쳐 소개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 명의 사업가가 여러 개 사업을 일으키면서 계열사들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재벌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곧바로 재벌의 부정적인 측면을 집중 거론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재벌들의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한국 30대 재벌 집단의 자산총액이 한국 전체의 국내총생산(GDP)보다 커질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상위 10대 재벌의 자산총액이 GDP의 80%에 달하는데도 이들에 의해 직접 고용된 사람은 94만 명(3.5%)에 불과하다”며 “재벌들의 성장이 경제 전체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하는 중소기업 성장마저도 방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단순히 경제 현상으로 그치지 않으며 재벌들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는 등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며 “재벌들의 경제력 남용을 규율하지 못한다면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막는 게 경쟁당국과 경쟁법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 오너 일가는 주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오너 일가만의 이익을 위한 사익추구행위를 하게 된다”며 “재벌의 경영권이 2세를 지나 3세로까지 승계되면서 이들은 창업자들과는 달리 위험에 도전해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사익추구 행위를 통한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들이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며 “장관급 공무원이 해외 관료들 앞에서 이것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말하면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강연 이후 밀로에 오브라도비치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장과 만나 공기업 경쟁법 집행과 관련한 한국의 경험을 공유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오는 17일까지 세르비아를 시작으로 벨기에와 독일을 잇달아 방문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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