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사람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슨 말을 남길까? 누구든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고 회한, 아쉬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등….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죽기 전에 한 말은 아래 세 가지 중 하나라고 전해진다. “하늘에서는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무 아쉽네, 아쉬워. 너무 늦었어!”, “친구들이여, 박수를 쳐라. 코미디는 끝났다.” 절대 고독과 고통의 생을 살았던 베토벤이 마지막에 남긴 말은 이승에서의 처절한 삶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도 있다. 육군 장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말했다. “나를 선 채로 묻어다오. 독일을 마주보게.”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최초로 신문을 발행한 앤드루 브래퍼드라는 사람은 눈을 감기 전에 말했다. “신이시여, 오자(誤字)를 용서하소서.”
이승에서 맺은 인연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도 절절할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임종을 지키는 딸에게 말했다. “안녕…. 딸아, 우리 다시 만나면….” 미국의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부인에 대한 사랑 고백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사라, 사랑해. 사…랑…해….” 작년 11월 말 별세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도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 “나도 너를 사랑해”였다.
삶의 치열함을 일깨워주는 말도 있다. 윈스턴 처칠은 “오, 나는 모든 것에 지쳤다”고 하면서 숨을 거뒀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충분하다”고 했으며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피곤해, 너무 피곤해”라고 말하면서 북망산으로의 발길을 재촉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의 두려움
죽음을 면전에 둔 인간은 대부분 삶에 애착을 느끼거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알렉산더 블랙웰이라는 영국의 모험가는 1747년 스웨덴에서 정치적 음모에 가담한 죄로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단두대 위에 머리를 놓자 사형집행인은 머리가 놓인 위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블랙웰은 머리를 바로 놓으면서 말했다. “실수를 해서 미안하오. 사실 참수형을 당해보기는 처음이라서 말이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나를 위해 건배해 주게”라고 말했다.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거장의 의연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처형 직전, 그녀는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자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왕비로서의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네빌 히스라는 살인자는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위스키 한 잔을 요청하면서 말했다. “아, 기왕이면 더블로 주시오.” 의연함보다는 체념적, 실리적인 살인자의 마지막 순간이 느껴진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영웅들은 죽기 직전에도 의기양양했다. 마오쩌둥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을 남겼다.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는 마지막 메시지가 있는지를 묻는 하녀에게 외쳤다. “나가. 마지막 말이란 그동안 충분히 말하지 못한 바보들에게나 필요한 거야!” 알렉산더 대왕은 누구를 후계자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강한 자”라고 말하면서 숨을 거뒀다. 이 사람들은 저세상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설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연하고 기품 있는 마지막
죽음과 종교는 이웃사촌이다. 나약한 인간은 죽어가면서 신에게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죽기 직전에 신앙고백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는 말했다. “알라여, 당신 뜻대로 하소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나의 영혼을 하느님께, 나의 육신을 대지에, 나의 소유물을 친척들에게 맡깁니다”라고 말했다.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신이여, 믿습니다. 저의 불신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천국에 저를 받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콜럼버스도 “오, 신이여. 제 영혼을 당신에게 의탁합니다”라고 해 인생 항해의 종착역이 하느님임을 고백했다.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특별했다. “나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고 싶다. 지옥에서는 교황, 왕과 왕자들을 만날 수 있지만 천국에는 거지, 수도사와 사도들만 있을 테니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평소 그의 정치철학을 듣는 듯하다.
앞서 간 분들의 마지막 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또 죽음을 목전에 둔 나의 내면의 소리는 무엇일지, 또 성숙한 자세로 의연하고 기품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는 비슷한 질문으로 생을 마감했다. “잘사는 것과 잘 죽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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