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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복지부동에…무용지물 된 블루투스 저울·IT 재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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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행정에 발목 잡힌 혁신기술

공무원 '본허가 법제화' 의무 없어
임시허가 내주고 '뒷짐'



[ 김주완 기자 ] “적극행정을 장려하고 소극행정이나 부작위 행정은 문책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부처 장관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박근혜 정부가 규제 혁파를 위해 도입한 ‘신속 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가 반면교사다. 이를 개선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새로 내놨다.

관건은 공무원들의 적극행정이다. 신기술·신서비스에 대한 임시허가 기간이 끝나면 본허가를 받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임시허가 기간 공무원들이 관련 입법 또는 법령을 개정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시허가 받고도 시장에 못 내놔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2015년 시행된 신속 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의 성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제도는 인허가를 받기 어려워 정보통신기술(ICT) 사업화가 지체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새로운 기술·서비스 개발자가 허가 등 근거 법령을 못 찾을 때 정부가 도와준다는 게 핵심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 임시로 허가(임시허가)를 내주는 방식이다. 임시허가 기간은 1년이고 연장 신청으로 최장 2년까지 가능했다.

이 제도로 임시허가를 받은 기술은 4건이었다. 1호가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전자저울’이다. 농수산물 집하과정에서 일일이 저울에 달고 손으로 무게 등을 적어야 하는 불편을 해결할 혁신 융합제품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계량법상 통신과 데이터 관리에 대한 기준이 없어 본허가를 받지 못했다.

2호 임시허가 제품은 KT스카이라이프의 ‘접시 없는 위성방송’이었다. 위성방송 신호를 전화국에서 수신하고 인터넷TV(IPTV)망을 통해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불법 논란을 거친 끝에 본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3호와 4호 임시허가는 소방 관련 기술에 부여됐으나 본허가를 받지 못했다.

3호인 코너스의 ‘지능형 화재대피 유도시스템’은 법령에 네트워크(무선방식) 기준이 없어 임시허가에 그쳤다. 엘디티가 개발한 ‘스마트 화재 예방 시스템’은 임시허가 4호였지만 역시 소방시설법상 무선 방식 기준이 없어 출시하지 못했다.

극명하게 드러난 소극행정

본허가를 못 받았던 업체들은 모두 담당 공무원이 적극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불법이 아니라 법령 미비로 임시허가를 받았고, 제품에 문제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방치한 것은 직무유기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설완석 그린스케일 대표는 “전형적인 소극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엘디티 관계자도 “당시 정부에서 임시허가를 내준 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소방업체 눈치를 보면서 오히려 신기술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KT스카이라이프의 ‘접시 없는 위성방송’이 본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과정은 씁쓸했다. 케이블TV업체, 통신사 등 경쟁업체들이 정부에 불법 사업이라며 사업 중단을 건의하고 신고해 논란이 커지면서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자 공무원들이 신속하게 법 개정을 추진했고 이듬해 법적 근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실효성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규제 샌드박스도 박근혜 정부의 신속 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와 똑같은 허점이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임시허가 유효기간을 최장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했다. 법으로 금지된 신기술·신서비스인 경우 테스트 기간 중 규제를 면제(실증특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규제 샌드박스로는 임시허가 8건, 실증특례 9건이 부여됐다. 맹점은 본허가를 위한 담당 공무원의 법적 근거 마련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 근거 법률인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은 임시허가와 실증특례에 대해 ‘법령이 정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규제 샌드박스법인 ‘산업융합촉진법’에서는 ‘법령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더 강하게 명시하고 있긴 하다. 그렇다고 법 개정 착수가 법적 근거 마련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산업융합촉진법에선 ‘임시허가 유효기간 내에 허가 등의 근거가 되는 법령 정비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 법령 정비가 완료될 때까지 유효기간이 연장되는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임시허가가 유지된다고 해도 정부 조달사업에는 참여하기 어려워 사업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안전 등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정식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임시허가 땐 공무원들의 법적인 본허가 근거 마련을 의무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규제 샌드박스 법안을 처리할 때도 논의됐던 내용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후속 조치로 법제화하는 것도 늦다”며 “임시허가 또는 실증특례를 받자마자 곧바로 관련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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