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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15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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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서양 연극에 ‘단지 15분(Just 15 minutes)’이라는 작품이 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 과정을 마친 한 청년에게 ‘시한부 인생’ 진단이 떨어졌다. 남은 시간은 단 15분. 망연자실한 사이에 5분이 지나갔다. 그때 억만장자 삼촌이 그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다는 전보가 도착했다. 몇 분 후에는 박사학위 논문이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는 전보가 왔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한 통의 전보가 날아왔다. 애타게 기다려온 연인의 결혼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 전보도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보여줬다.

15분은 하루(1440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하루 15분씩 한 달이면 약 8시간, 1년이면 91시간이다. 하루에 15분씩 독서하면 1년에 10권 이상을 읽을 수 있고, 영어 단어 5개씩을 암기하면 1800개를 외울 수 있다. 이 ‘틈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랜싯’에 따르면 하루 15분씩 운동한 사람의 평균수명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년 길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15분간 1마일(1600m)을 뛰는 ‘데일리 마일(daily mile)’ 프로그램으로 비만 학생들의 체지방을 연 4% 줄이는 데 성공했다. 과목별 성적은 전국 평균보다 14~26% 높아졌다.

예로부터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까지도 지배한다”고 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다. 일본 정신과 전문의 와다 히데키는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거나 약속 장소에서 만남을 준비하는 15분이 당신의 직급과 연봉을 좌우한다”며 “퇴근 전에는 15분간 내일 업무를 점검하라”고 권한다.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은 직원들과의 ‘15분 면담’으로 놀랄 만한 성과를 올렸다. 15분간의 짧은 시간에 무슨 대화가 될까 싶지만, 미리 받은 서면답변을 바탕으로 깊은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매매시스템 등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덕분에 지난해 순이익을 전년 대비 48.1%나 늘릴 수 있었다.

어떤 일에 15분(quarter) 이상 집중하기 힘든 현상을 쿼터리즘(quarterism)이라고 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15분이야말로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황금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로마 철학자 루시우스 세네카가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2000년 전에 벌써 일깨워줬건만….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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