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레몬법’ 두 달째 제자리
23개 수입차 중 10곳만 시행
수입차협회장 조차 ‘외면’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수입차 브랜드는 대부분 도입을 외면한 채 팔기만 급급한 태도다. 일부는 “규정을 정확히 해달라”는 내용을 국토교통부(국토부)에 서면으로 전달했다. 이해관계 충돌로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를 입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경닷컴> 취재 결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등록된 23개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10곳만 레몬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절반 이상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레몬법은 신차 구매 후(1년?2만㎞ 미만) 하자가 또다시 발생하면 중재를 거쳐 교환 또는 환불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말한다. 중대한 하자가 2회, 일반 하자는 3회 이상 일어나 수리를 받으면 해당된다.
이 법은 ‘달콤한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신맛이 강한 레몬이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1975년 제정된 미국의 소비자 보호법이 원조다.
수입차 브랜드 중 볼보자동차와 BMW, 소형차 미니, 도요타, 렉서스, 닛산, 인피니티, 롤스로이스는 신차 매매계약을 맺을 때 교환·환불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취재에 들어가자 뒤늦게 “도입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반대로 벤츠는 아직까지 참여를 꺼리고 있다. 3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에 오른 벤츠지만 책임은 뒷전으로 미룬 채 팔기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회사 관계자는 “중재규정 등 쟁점 사항에 대해 국토부에 서면질의 했다”며 “답변서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수입차협회장인 정우영 사장이 이끄는 혼다 역시 레몬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다. 수입차 수장이 먼저 나서서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 협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수입차 업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차인 포드와 캐딜락은 특히 자국과 달리 한국 시장에서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면서 뭉그적거리는 내부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차 브랜드 직원은 “아직 결정된 사항과 진전이 전혀 없다”며 “일선 공식 딜러사와 마찰까지 빚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아우디와 폭스바겐, 포르쉐, 마세라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은 “지금 확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부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는 ‘모르쇠 해명’으로 일관했다.
푸조 및 시트로엥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만 유일하게 적극 도입 의사를 내놨다. 회사 측은 “빨리 절차를 밟고 있으며 시기를 조율 중”이라며 “프랑스 본사 답변만 남겨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절반이 넘는 수입차 브랜드는 법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내부에선 의도적인 미루기란 목소리가 나온다.
레몬법을 시행 중인 한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비용이 얼마나 들까 계산기만 두드리는 것”이라며 “솔직히 준비 기간은 충분했고 놀았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7월31일 한국형 ‘레몬법’을 입법예고했다. 연초에는 자동차안전?하자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교환·환불 중재규정’을 마련했다.
수입차 브랜드가 시간 부족을 탓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됐다. 최근 벤츠의 중형 세단 E클래스를 알아보던 30대 직장인 최모씨는 “결함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덜컥 구입하기 겁이 난다”며 “우선 구매 시기를 최대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레몬법은 지금 ‘개점휴업’ 상황”이라며 “제대로 시행되려면 최소 1년여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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