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25일자로 올해 법관 정기인사가 이뤄졌습니다. 총 1043명의 판사들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체 법관 현원(대법원장, 대법관 제외) 2886명 중 36%가 이동한 것입니다. 다만 신설된 서울고등법원 인천재판부, 수원고등법원, 수원가정법원 전보 인사는 3월1일자로 이뤄집니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이동이 있으면 그동안 정들었던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새로 함께 일할 선후배들을 환영하기 마련입니다. 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와 이번주 인사하러 다니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동에 근무하는 판사들은 특별한 고충이 있습니다. 들러야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각급 법원에 배치할 판사의 수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서초동 소재 법원별 법관 수 합계는 749명입니다. 전국 판사의 24%가 서초동에 몰려있는 셈입니다. 서울중앙지법(389명)에 가장 많으며 이어서 서울고법(220명), 대법원(101명), 서울회생법원(39명) 순서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소속이었다가 25일자로 다른 법원으로 전근한 A판사는 지난주 작별 인사를 마치는 데 꼬박 2박3일 가량 걸렸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조직별, 층별로 동선을 짜는 것부터가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기껏 사무실 문을 두드렸더니 재판이나 기타업무 등으로 부재중이어서 6~7번씩 재방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서초동에는 법원 외에도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도 있습니다. 서초동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도 1500명 가량 됩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검사나 변호사들과도 인사를 하려면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법원 내 조직문화가 이러한 ‘인사전쟁’을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 판사는 ”인사하러 들르면 ‘뭐하러 이렇게 왔냐’고 하지만 막상 인사도 없이 떠나면 ‘예의 없는 녀석’이라는 평을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법관들은 서울에 있는 지방법원 4곳(동·서·남·북부지법)을 일컬을 때 ‘동서남북’이 아닌 ‘동남서북’이라고 표현합니다. 남부지법이 서부지법보다 먼저 만들어져 서열이 높기 때문입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관할 지원장들이 회의를 하면 ‘목장순’ 순서대로 앉는다고 합니다. 목포지원장, 장흥지원장, 순천지원장 순서라는 뜻입니다. 장흥지원이 관할하는 인구는 불과 8만여명으로 86만여명 가량을 관할하는 순천지원에 비해 훨씬 적지만, 장흥지원이 순천지원보다 먼저 생겼기에 장흥지원장이 상석에 앉는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법연수원 성적이나 법관 임용 후 첫 근무지가 중앙지법인지 지방 법원인지 등에 따라 판사 개인들도 암묵적으로 서열화돼 있습니다. 이처럼 엄격한 서열 문화가 인사이동 시기 판사들이 2박3일 동안 6번이고 7번이고 선배들을 찾아 ‘인사전쟁’을 치르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행위 자체는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자발적인 인사가 아니라 인사를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문화가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끝) /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