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골격 로봇 등 재활의학에 필요한 기술
장애인 수요 반영한 多학제적 연구 필수
미래 의료 선도 위해 병원·대학 다 변해야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지난 주말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한 영화 ‘알리타’를 관람했다. 이 영화는 재활의학을 하는 필자에게 무척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주인공은 26세기의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다. 고철 더미에서 팔, 다리, 몸통 없이 머리만 성한 모습으로 발견된 알리타는 공학자 같은 미래의 의사가 강력한 인공심장과 로봇 팔, 다리를 이식한 후 인간보다 뛰어난 전사(戰士)의 능력을 갖게 된다.
캐머런 감독의 영화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는 아바타 등 상상 가능한 SF(공상과학) 요소가 대거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가상현실, 인공지능, 로봇 의수·의족, 착용하는 외골격 재활로봇 등은 모두 현재 개발 중이거나 첨단 재활치료 또는 기구에 응용되는 기술들이다. 요즘 재활의학 국제학술대회의 전시장을 앞서 내다본 듯하다.
영화에 나오는 사이보그들의 경기 장면은 로마시대 마차경기나 20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사이배슬론(cybathlon)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이배슬론은 세계적 재활로봇 공학자인 로버트 라이너 취리히 연방공과대 교수가 창시한 대회다. 로봇과 같은 첨단 보조기구를 착용한 장애인들이 선수로 참가해 역량을 겨루는 대회로 장애인 올림픽과 유사하다. 전자 의수 경기, 외골격 로봇 경주, 전동 휠체어 장애물 경주, 뇌파를 이용한 게임 등이 펼쳐진다. 영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현실이 영화 속에서 더 발전되며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외골격 로봇, 전동 휠체어 경기, 뇌파를 이용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게임 등의 종목에 참가해 한국 재활공학과 뇌공학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기술들은 재활의학, 재활공학, 로봇공학, 뇌과학, 인공지능을 결합한 다학제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수요자인 장애인의 필요를 적극 반영해 개발해야 하는 것 또한 필수 요소다. 그 나라의 의학, 공학, 뇌과학의 학문적 수준과 장애인 복지 및 의료시스템 수준이 총체적으로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캐머런 감독의 SF 영화나 원작들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창의력과 방향을 제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그 과정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기술이 한 명의 천재에게서 나오는 세상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의학자 및 공학자의 융합 연구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새로운 기술의 효용성이 입증되면 적극적으로 보급해 활용하는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
공학자는 의학을 이해하고 의학자도 공학적인 원리를 알아야 한다. 결국 연구자 모두가 이들 기술의 소비자인 장애인의 요구를 듣고 수요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라이너 교수가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인 동시에 취리히에 있는 발그리스트 대학병원의 척수손상센터 교수를 겸하고 있는 것은 큰 시사점을 준다.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뇌 기능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이게 하는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피츠버그의대 연구진이 지난해 방한한 적이 있다. 이들 역시 연구를 위해 뇌과학자, 공학자, 재활의학과 의사, 신경외과 의사가 연구실을 바로 옆에 두고 수시로 회의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 재활병원인 시카고재활연구소는 최근 병원 이름을 어빌리티 랩이라고 바꿨다. 재활치료실은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이면서 공학자, 의사, 치료사가 함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곧바로 환자에게 적용해 보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로부터 지원받아 다양한 재활로봇 제품을 개발한 일본 나고야의 후지타대병원 역시 환자의 재활치료실에 많은 연구진이 상주하면서 치료 기술과 재활로봇 등의 치료 장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는 의과대학과 공과대학이 같이 참여하는 연구병원이 아직 없다. 연구를 위한 교수의 실질적인 겸직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제도적 뒷받침도 없는 상황이다. 미래 의료기술을 선도하려면 병원도, 대학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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