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IT과학부 기자) 스마트폰으로 배달음식을 시킬 때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대신 ‘디톡’이라는 앱(응용프로그램)을 써 본 적 있나요. 부동산 매물을 찾을 때는 어떤 앱을 선택하나요. ‘직방’ ‘다방’과 ‘한방’ 중에 무엇을 많이 썼나요.
디톡과 한방은 민간 정보기술(IT) 기업의 ‘수수료 폭리’에 맞선다는 취지로 업계 이익단체들이 내놨던 서비스입니다.
디톡은 2014년 한국배달음식업협회가 출시한 음식배달 앱인데요. 수수료 없이 월 1만5000원 회비만 받는다고 홍보했지만, 골목 식당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한방은 지난해 1월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의욕적으로 선보인 부동산 중개 앱입니다. 중개업소들이 한방에만 매물을 올리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했고, 지금도 앱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실수요자 사이에서 직방이나 다방에 비해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양분하고 있는 숙박예약 앱 시장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대한숙박업중앙회는 지난해 숙박업소들의 수수료 부담을 낮추겠다며 ‘이야’라는 자체 앱 개발을 준비했는데요. 당초 계획과 달리 진척이 잘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정부 부처들이 실적 쌓기용으로 무더기로 찍어낸 앱들이 사실상 흉물로 방치돼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소상공인 단체들이 내놓은 앱들도 줄줄이 참패했긴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IT 기업들의 서비스에 비해 만듦새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얼마 전 전국택시연합회, 전국개인택시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4개 택시단체가 개발에 참여한 ‘티원 택시’라는 앱이 등장했습니다. 카카오택시(카카오 T)를 견제할 ‘대항마’로 야심차게 내놨다고 합니다.
지난 12일 구글 앱 장터에 등록된 티원 택시를 내려받아 써 봤습니다. 안타깝지만, 디톡이나 한방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의 세련미가 떨어져 공공기관 앱을 보는 것 같았고, 장소에 따라 위치정보 인식이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티원 택시는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고 버튼만 누르면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원터치 콜’ 방식을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웠습니다. 골라태우기를 방지하고, 어르신이나 외국인도 쉽게 이용하게 한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일선 택시기사들 중에는 “목적지가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카카오가 목적지를 노출하지 않는 ‘스마트 호출’ 기능을 출시했을 때 택시기사들이 조직적인 거부 움직임을 보였던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길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음에도 굳이 카카오택시를 쓰는 사람 중엔 ‘목적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승객들의 만족도 역시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탑승 후 기사들이 운송을 거부했을 때 티원 택시 앱에서 제재할 수단도 없습니다. 택시단체와 앱 개발사 측은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승차거부를 줄여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출시 첫날 티원 택시에 가입한 기사는 6만명 정도였습니다. 전국 택시가 20만대를 넘는데, 기대에 못미친 상태로 출발한 셈이죠. 택시조합들은 기사들에게 “카카오 앱을 지우고 티원 택시로 승객을 받으라”고 적극 유도하고 있습니다. 4개 택시단체는 티원 택시를 개발한 회사(티원모빌리티)에 직접 돈을 투자해 지분도 5%씩 확보했다고 합니다.
티원 택시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길 바랍니다. 카카오가 사실상 독점하던 택시 호출 앱 시장에 경쟁 바람이 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매력적인 기능과 디자인으로 ‘시장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택시단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보급된 이 앱이, 승객과 기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택시업계가 티원 출시를 알린 보도자료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동안 택시업계는 심야시간대 고질적인 승차거부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아왔다. 그로 인해 카풀 앱과 관련한 논란 이후에도 일방적인 비난 여론을 감내하여 왔다.” 반성문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앱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만 보여도 많은 승객들이 카카오편 대신 택시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끝)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