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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도 박사급 연구원 대우…S급 개발자 실리콘밸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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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인재 절벽…비상등 켜진 IT코리아

한국 대학원생까지 '입도선매'
AI 등 개발자 3만여명 부족 속
인재유출 겹쳐 국내기업 아우성



[ 송형석/배태웅 기자 ] “인턴도 박사급 연구원 수준으로 대우해 줍니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성원 씨(27)가 제시받은 연구전담 개발자 채용 조건이다. 제안을 한 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본사를 둔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 엔비디아다. 박사급 연구원 대우를 받는 김씨의 신분은 정직원이 아닌 인턴, 이마저도 올여름 3개월만 일하는 12주짜리다.

김씨와 엔비디아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커뮤니티에 인공지능(AI) 음성합성 기술 관련 논문의 데이터를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우연히 김씨의 연구 성과를 접한 브라이언 카탄자로 엔비디아 응용딥러닝연구소 부사장이 즉석에서 댓글로 채용을 제의했다.

김씨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인턴 계약이 성사됐다. 국내 기업보다 한 박자 빠른 ‘입도선매’였다. 엔비디아는 구직자가 일할 준비가 됐을 때가 아니라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시점에 영입을 제안했다.

2015년 8월 UNIST(울산과학기술원)를 졸업한 김태훈 씨(27)는 최근 일론 머스크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공동 설립한 비영리 연구기업 오픈AI에 합류했다. 그가 소지한 학위는 달랑 학사뿐인데도 첫해 연봉이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가 넘는다.

김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구글의 인공지능(AI) 개발회사 딥마인드의 비공개 코드를 홀로 구현해 공개하면서 유명해졌다. 오픈AI는 김씨가 대학을 졸업한 2015년부터 ‘러브콜’을 보냈다.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자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마치는 지난해 8월까지 그를 기다렸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든 소프트웨어 개발 인재가 절대 부족해 아우성인 한국에 이들의 예는 시사점이 크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4대 축인 AI, 클라우드, 가상·증강현실, 빅데이터 분야에서 2022년까지 국내 개발자 3만1833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획기적인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 전략 없이 이대로 가다간 ‘IT(정보기술) 코리아’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학에 연구과제 주면서 인턴 '찜'…'코리안 특급' 빨아들이는 美기업들

한국 S급 인재 '입도선매'
페북·아마존·구글·애플·MS 등
'S급 성장' 판단 땐 대학 때부터 인턴·고액연봉 제안하며 '러브콜'

병역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한국인 개발자 보내 후배 영입도

국내 대기업들은 '속수무책'
실리콘밸리의 핵심인재 사냥에…국내 기업들 인력난 갈수록 심화

AI·증강현실 등 2022년까지 개발자 부족 3만2000명 달할 듯


한발 빠른 실리콘밸리 공룡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국내 S급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다. S급으로 성장할 만한 인물이란 판단이 서면 대학 재학시절부터 영입에 공을 들인다.

당장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최고위 임원이 직접 채용업무를 챙기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큰일을 할 기회’와 ‘파격적인 금전적 보상’이란 두 가지 카드를 쥐고 있는 실리콘밸리 공룡들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내 개발자를 집중적으로 뽑는 곳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이들은 주로 병역문제를 해결한 석사급 개발자를 원한다. 서울대 KAIST 등 국내 명문 공과대학 출신을 기준으로 한 초봉은 연봉 13만달러(약 1억4500만원) 선. 미국에서 5년 정도 경력을 쌓아 능력을 인정받으면 50만달러(약 5억5900만원)까지 연봉이 오른다.

이들이 한국 개발자를 선호하는 것은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도 S급 개발자 연봉이 만만치 않지만 고액 연봉을 받는 개발자가 즐비한 실리콘밸리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채용 방식은 다양하다. 한국인 개발자가 모교를 찾아가 알음알음 후배를 영입하게 하거나 채용 담당자를 대학으로 파견한다. 개발자 커뮤니티도 공략 대상이다. 주목되는 성과물을 내놓은 학생이라면 정직원 또는 인턴 자리를 제안하는 방법으로 ‘침’을 발라놓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 공과대학들과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원생의 인턴십 참여를 독려해 인재를 끌어들인다. 12~24주 인턴과정에서 능력을 검증한 뒤 입사를 희망할 경우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2005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인턴십 프로그램을 거친 한국인은 185명에 달한다. 이영기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도 마이크로소프트 인턴 출신이다.

글로벌 콘퍼런스 참가 목적도 ‘채용’

글로벌 기업의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기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인력난은 한층 더 심해졌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AI 부문에서 9986명, 증강·가상현실 분야에서 1만8727명 등 3만1833명의 개발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모자라는 인력 대부분이 단기간에 키우기 힘든 석·박사 출신이다. AI 부문은 부족 인원의 70%가 넘는 7268명이 석·박사 출신이다. 클라우드 분야는 예상되는 인재의 공급과 수요의 차이가 335명뿐이다. 대상을 석·박사급으로 좁히면 모자라는 개발자의 숫자가 1578명으로 급증한다.

국내 기업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경기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이낙연 총리에게 “정부가 소프트웨어 분야 인재를 키우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5세대(5G) 이동통신 분야를 예로 들었다. 그는 “스마트폰은 3000만 코딩 라인(소프트웨어 명령어)이 필요하지만 5G 통신장비는 20배인 6억 코딩 라인이 필요하다”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절대 부족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해 12월 5일 열린 ‘2018 인터넷 기업인의 밤’ 행사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개발자 양성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토로했다. 여민수 카카오 대표도 한 대표의 말에 공감하며 “그렇다고 카카오 개발자를 뺏어가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국내 기업도 앉아서 인재를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해외 콘퍼런스가 열릴 때마다 빼올 만한 인재가 있는지 따로 챙길 만큼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6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AI 기술 콘퍼런스 ‘CVPR 2018’ 행사장에 개발자 채용 부스를 별도로 차렸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개발자 중 일부는 비싼 세금과 집세 등으로 귀국을 고민한다”며 “이들을 끌어오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배태웅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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