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科技 발전 비결에 관심 높은 터키
KAIST 같은 대학 설립에 협력 요청도
경제 모델 이어 韓 ICT 확산 계기 될 수도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연말 각 분야 전문가 10명과 과학기술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터키에 다녀왔다. 터키는 6·25전쟁 때 1만5000여 명의 군대를 파병한 우방이다. 문화적으로도 흉노, 돌궐, 위구르 시대까지 1000년 가까이 경계를 맞대고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과 함께 살았던 친근한 이웃이다. 말과 관습이 가장 닮은 소위 알타이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터키인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른다. 지금은 9000㎞ 이상 떨어진 아나톨리아반도에서 살지만 본향의 그리움을 잊지 못하나 보다.
그래서인지 터키는 그동안 유엔이나 국제무대에서 무조건 한국 입장을 지지해왔다. 지구상에서 한국인이 일등국민 대접을 받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터키일 것이다. 그런 나라와의 협력은 문화적 친근감을 바탕에 두고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 협상을 통해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형제의 나라’나 ‘6·25전쟁의 혈맹’이란 지난 70년 동안의 전통적 수사를 벗어나 터키는 더욱 실질적인, 다른 차원의 협력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성공한 경제 모델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선진국의 기적을 이룬 교육개발과 열정도 아니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4차 산업혁명을 함께 준비하면서 기술강국으로서 한국의 첨단기술과 축적된 연구성과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협력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예산이 4.23%로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도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AI, 소프트웨어, 5세대(5G) 이동통신, 국방 R&D, 컴퓨터, 양자물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린 회의와 첨단 연구단지 현장방문을 통해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 축적과 ICT 분야에 대한 그들의 투자 및 연구 열정에 한국 과학자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터키는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이 되는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KAIST 같은 연구중심대학 설립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제 많은 국가가 한국을 교육이나 경제 발전의 성공적인 모델을 넘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한 배경과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매우 기뻤다.
터키의 과학기술 연구를 총괄하는 단체는 준정부기구인 투비탁(TUBITAK)이다.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성격이다. 1963년 설립된 최고의 과학기술연구기관으로, 산하에 15개 연구소를 두고 있다. 연구진만 2500여 명에 이르는 터키 과학연구의 총본산이다.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인식이나 자존감이 높아 투비탁 취업 선호도가 대학을 앞지르는 경향을 보인다. 또 다른 과학자 단체인 터키과학한림원은 과학기술 분야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문학자들이 정회원으로 참여해 매우 놀랐다. 우리가 배울 점이다.
근대 역사에서 터키의 과학은 유럽에 뒤처진 수준이 아니었다. 2명의 터키인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았고, 오스만제국 시기인 1773년 이미 ‘왕립 기술학교’를 개교했다. 공화국 설립 이후인 1928년에 근대식 교육기관인 고등기술학교, 1944년엔 이스탄불 공과대학이 문을 열었다.
이 대학은 과학기술 분야 명문으로 역대 터키 대통령 네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과학자 1202명의 망명을 허용해 터키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으로 삼은 포용정책은 인상적이었다.
새마을운동 신화로 시작된 한국의 이미지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 발전 모델, 열정적 교육 몰입 정책 시대를 넘어 많은 개발도상국에 과학기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미래의 경쟁력이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선진 기술강국과 협력체제를 굳건히 하고 우리가 구축한 첨단과학기술을 단계적으로 필요로 하는 나라에 전수해 ‘ICT 한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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