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한진칼 경영참여
기금운용委, 한진칼에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결정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겨냥한 정관변경 주주제안 하기로
주총 참석한 주주 3분의 2 찬성해야…통과는 힘들 듯
재계 "경영 위축 우려…국민연금 독립성 확보가 우선"
[ 유창재/김보형/김대훈 기자 ]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민간 기업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상대로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재계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자본시장법상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 기금 운용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경영참여 현실화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논의는 지난달 16일 기금운용위원인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기금운용위 소집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기금운용위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를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자문기구다.
수탁자책임위는 지난달 23일 오전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 9명 중 과반인 5명이 현재로서는 두 회사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같은 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코드 관련 발언이 나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문 대통령은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예정에 없던 수탁자책임위가 다시 열렸지만 의견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기금위는 이 같은 수탁자책임위 검토 결과를 토대로 1일 4시간 넘게 토론을 벌여 한진칼에 대해서만 정관변경 안건을 주주총회에 올리기로 결론 내렸다. 팽팽히 맞선 찬반 의견의 중간 지점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대한 의견을 수렴했으며 표결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관변경안 통과 어려울 듯
국민연금은 다음달 열릴 한진칼 주주총회에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를 3년간 경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변경안을 주주제안을 통해 올리기로 했다.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형이 확정되면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한진칼 지분 28.7%를 보유하고 있어 표대결을 통해 정관변경안을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관변경안은 특별결의사항이어서 출석 지분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이 7.34%에 불과하다. 10.71%를 보유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3분의 2 이상의 표를 모으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재계 ‘기업활동 위축시킬 것’ 우려
한진그룹은 이날 “국민연금 결정으로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행동주의 펀드 KCGI에 이어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에 대응하느라 회사 경쟁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진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 정관변경을 요구해올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했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결정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 기업은 290여 곳이다. 10% 이상 보유 기업도 90여 곳에 달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투자 및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경영계는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 방안 마련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는 현 지배구조에서는 정부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구조를 개편해 정부 또는 정치권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선 국민 경제 전체적 관점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창재/김보형/김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