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창업’이라고 하면 패기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청년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무 살 즈음에 창업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극적인 스토리가 많아서일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27세에 공동창업한 브라이언 체스키, 우버를 28세에 출범시킨 트래비스 캘러닉 등 최근 성공사례에도 청년 사업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아예 30대 이상은 퇴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는 곳도 많다. ‘대학은 안 나와도 되지만, 30세 이상은 지원 불가’라는 채용공고문이 뜰 정도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한국에서도 청년기업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창업 세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르다. 오히려 중장년 창업자들의 성과가 돋보인다. 2007~2014년 미국의 창업자 270만 명 중 상위 0.1% 성공신화를 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설립자 나이는 평균 45.0세다. 성공 확률에서 50대 창업자가 30대 창업자의 1.8배에 달했다. 연구진은 중년창업자층에 벤처캐피털 등 사회적 자원이 배당되도록 만드는 게 사회·경제적 번영에 유리하다고 결론 냈다.
중·장년 창업 성공 비결은 뭐니뭐니 해도 다양한 경험의 축적이다. 3년 이상 산업계 경험을 쌓은 창업자가 ‘0.1%’에 들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현장에서 쌓은 기술과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창업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는 의미다. 인적 네트워크와 의사소통 능력 면에서도 중년창업가들이 탁월하다.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이 청와대 오찬에서 ‘경력자 창업’ 지원 강화를 언급한 것은 그런 인식을 깔고 있다.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 등의 책을 쓴 이 보좌관은 ‘시행착오의 축적’을 강조한다.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디어를 혁신에 이르게 하는 ‘축적의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작은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시행착오 축적을 통해 조금씩 ‘스케일업’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입니다.”
스케일업 과정을 거쳐 만년에 만개한 기업가는 부지기수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 혁신을 이끈 나이가 52세다. 오랜 시장 경험에서 축적한 안목으로 거대한 시장을 창출해 냈다. 이병철 삼성 회장이 반도체에 도전해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그의 나이 73세 때 일이다.
창업에는 벤처정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나이가 벤처정신과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40·50·60대에 시작하는 도전 자체가 남과 차별화된 벤처정신이다. 이 보좌관 제안에 문재인 대통령은 “시니어 창업이란 말이 어색했는데 앞으로는 경력자 창업이라는 말을 써야겠다”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한국의 가장들을 편의점과 치킨집이 아니라 ‘축적의 길’로 진입시키는 대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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