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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SOC 투자 안한다더니…경제성 눈감은 채 '지역별 나눠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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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조원 사업 예타 면제
정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3개 사업 확정

일자리·경기 부진에 '4대강급' 토건사업 띄우기
R&D 통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예산 3.6兆 불과

野·시민단체 "총선 앞둔 선심성 퍼주기" 비판
예타 유명무실화 우려…결국 미래세대에 부담



[ 이태훈/정의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1월 대선 정책공약집을 발표하며 “국가 재정을 4대강 등 토건 사업보다 사람에 우선 투자하겠다”며 “검토 단계에 있는 대규모 토건 사업은 타당성을 철저히 따져 추진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4월 대선 유세 때에도 “4대강 사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상적인 사업이 아니었다”며 “정책 판단의 잘못인지, 부정부패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고 불법이 드러나면 법적 책임과 손해배상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대규모 토건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을 지양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총 사업규모 24조1000억원에 달하는 23개 지역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겠다고 29일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총 사업비 22조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인 시민단체와 환경단체까지 “묻지마식 토건 재정 확대로 경기부양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은 수년 뒤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예타 유명무실해질 것”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 정책·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정부가 이날 “예타를 면제해주겠다”고 밝힌 23개 사업 중에는 과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예타에서 탈락한 사업 8개, 예타를 진행 중이던 사업 8개가 포함됐다.

23개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사업비가 들어가는 남부내륙철도(4조7000억원)는 2017년 예타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0.72가 나와 탈락한 사업이다. B/C가 1 미만이면 편익 대비 비용이 더 많다는 의미다. 예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B/C가 1.0 이상이어야 예타를 통과시켜준다. 울산 외곽순환도로(1조원), 서남해안관광도로(1조원), 부산신항~김해고속도로(8000억원) 등도 예타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 사업이다.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 등은 예타가 진행되던 중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새만금국제공항(8000억원)의 경우 예타를 신청한 적은 없지만 지난해 기재부가 이 사업에 대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 25억원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에 면제 대상에 못 들어간 지방자치단체가 다음에 예타 면제를 강하게 요구하면 정부는 거부할 명분이 없다”며 “예타가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간접자본(SOC)의 경우 건설 후에도 유지 관리 보수를 해줘야 하는데 여기에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며 “예타 면제는 결국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효과 제시 못한 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사진)은 이날 브리핑에서 ‘예타 면제 사업으로 인한 고용효과 및 생산유발효과는 얼마나 되느냐’란 질문에 “23개 모든 사업에 대한 일률적인 일자리 창출효과 및 생산유발효과를 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홍 부총리는 “잘 나오지 않는 숫자를 의무적으로 계산하려다 보면 오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에 따른 지역 균형 발전,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분석한 자료가 있느냐’란 물음에도 홍 부총리는 “사업 효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자료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또 이번 SOC 투자는 과거 정부와 달리 지역전략사업이 포함된 점이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체 사업비 24조1000억원의 83%인 20조원이 SOC 사업에 들어가고 홍 부총리가 강조한 지역 전략산업 육성비는 15%인 3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야당과 시민단체·환경단체 등은 내년 총선을 앞둔 전형적 ‘선심성 퍼주기’라고 지적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은 “예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거름망인데 정부가 내년 총선을 위해 정무적 판단으로 예타를 대거 면제했다”며 “초법적 위법적 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예비타당성조사

정부 재정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등을 미리 검증하는 제도.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 사업이 대상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평가를 수행하며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균형발전(25~35%)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 지역균형발전 사업 등은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이태훈/정의진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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