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철 하이센스바이오 대표
서울대 치대 학내 벤처로 출발
상아질 재생 충치 치료 기술 개발
치약 가글 등 의약외품도 함께 개발
존슨앤드존슨 GSK 등 다국적사에서 관심
"아말감이나 레진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쓰임새도 없는 상아질 연구를 하겠다고 하는가."
서울대 치대 교수인 박주철 하이센스바이오 대표(56)가 충치 때문에 손상된 상아질 재생 연구를 해보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만류했다. 충치를 낫게하는 의약품은 없지만 아말감, 레진 등 치아 충전재로 충치를 치료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한번 충치에 걸리면 언젠가 재발하게 되고 보철 치료, 신경 치료를 거쳐 결국 이빨을 뽑게 되는 사례가 흔한 만큼 근본적 치료제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14년만에 세계 최초 상아질 재생 기술을 찾아냈다.
박 대표는 “세계 치의학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성과”라며 “제품 상용화로 치과 치료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오랜 궁금증이 창업 ‘밀알’
2002년이었다. 조선대 치대 교수로 근무하던 당시 뉴욕주립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때다. 생화학교실의 한 교수가 치아에 뿌리가 없는 생쥐를 가져와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조선대 치대를 나왔지만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아 뼈와 연골 연구를 했던 박 대표는 무릎을 쳤다. 상아질로 구성된 치아 뿌리가 없는 원인을 밝히면 거꾸로 상아질 재생 연구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왜 치아는 한번 썩으면 다시 재생할 수 없는걸까.” 박 대표는 평소 갖고 있던 궁금증을 밝히기 위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상아질은 치아 신경세포가 있는 치수를 감싸고 있는 부위다. 치아의 단단한 겉표면인 법랑질(에나멜) 아래에 있으면서 감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충치가 생기거나 닳아서 상아질이 겉으로 드러나면 음식물을 씹거나 차갑고 뜨거운 물질이 닿을 때 통증을 느끼게 된다. 박 대표는 “손상된 상아질이 재생되면 충치는 물론 시린이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상아질은 인체의 여느 세포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충치 등으로 손상이 되더라도 좀체로 재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2016년 치과 분야 최고 학술지인 ‘저널 오브 덴탈 리서치’(JDR)와 ‘바이오 머티리얼즈’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치아 발생 과정에서 CPNE7 유전자 및 단백질이 상아질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상아질 재생 원리를 밝혀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대표는 창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기초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천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서서 창업을 권유했다. 박 대표는 충치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겠다는 확신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과 영향을 주는 게 좋은 연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론적 발견에 머물지 않고 의료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에서 창업했다”고 설명했다.
충치치료 새 지평을 열다
2016년 하이센스바이오를 창업한 박 대표는 상아질을 재생시키는 펩타이드를 찾는 연구에 매달렸다. 상아질을 재생하는데 쓰이는 단백질의 단점 때문이었다. 박 대표는 “단백질은 실온에서 보관이 어려운데다 단가가 높아 사업화에 한계가 있다”며 ”1년 정도의 연구 끝에 제조단가를 크게 낮춘 펩타이드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하이센스바이오는 동물실험을 통해 10개 아미노산을 합성한 펩타이드의 효능을 확인했다. 생쥐와 개의 치아에 생긴 충치 부분을 깎아낸 뒤 펩타이드를 흘려넣었더니 1주일 뒤 상아질 내 세관을 막아 충치 진행을 차단해주고 3주 뒤에는 치아로 손상된 만큼의 상아질이 자라났다. 국내 특허를 취득한데 이어 미국 등 12개국에 특허 출원도 했다.
사람 치아에 대한 효과가 궁금했던 박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손원준 서울대 치대 교수는 자신들의 치아로 직접 임상을 했다. 손 교수는 충치가 생긴 사랑니에, 박 대표는 시린이에 펩타이드를 주입해 효과를 직접 확인했다. 박 대표는 “동물실험에서 확인한 것처럼 사람 대상 실험에서도 상아질 재생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며 “상아질 두께를 원래대로 복원시켜주기 때문에 치료제가 없는 충치는 물론 시린이까지 낫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상아질 재생 기술이 치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충치와 시린이의 근원적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신경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 심한 충치의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박 대표는 “이 치료제를 쓰게 되면 충치를 없애기 위해 파낸 부위를 아말감이나 레진으로 메꿔주면 치료가 끝난다”며 “치과 치료가 훨씬 용이해지는데다 환자들도 충치나 시린이 재발 등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치료제부터 치약·가글까지
하이센스바이오가 준비 중인 사업은 세가지다. 상아질 재생 기술 하나로 충치 및 시린이 치료제, 치과 의료기기, 치약 가글 등 의약외품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충치와 시린이 치료와 관련한 사업군을 다양화하고 시너지를 높여 시장 지배력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치료제 개발은 현재 독성검사를 진행 중이다. 독성검사가 마무리되면 올해 안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1상 허가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내년 초에는 임상1상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박 대표는 “국내 임상1상이 마무리되면 미국서 글로벌 임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회사 측은 충치 치료제 시장은 25조원, 시린이 치료제 시장은 2조~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충치를 치료하는 의료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치아 충전재인 아말감과 레진에 CPNE7 기능성 펩타이드를 섞은 하이브리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아말감이나 레진처럼 치아의 탈락 부위를 메꾸어주는 기능과 동시에 상아질 재생 기능까지 갖추게 된다. 의약외품인 치약 가글 등으로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지방병원에서 연구자임상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시린이 증상이 70~80%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다”며 “GSK 콜게이트 등이 판매 중인 기능성 치약에 비해 효능이 뛰어나다”고 했다.
하이센스바이오는 세가지 제품군을 차례로 기술이전(라이센스 아웃)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박 대표는 “임상 비용 등 개발비 부담이 커 국내외 제약사 등에 기술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며 “존슨앤드존슨 GSK 3M 덴츠플라이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창의적 연구 비결은 몰입”
하이센스바이오 직원은 10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이 연구자다. 상아질 재생 연구는 박 대표의 서울대 치대 연구실에서 함께 이뤄지고 있다. 대학 연구실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10명이다. 학내 창업이 갖는 잇점을 십분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본사를 서울대 인근 낙성대R&D센터 건물로 옮겼다. 창업 둥지였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치대 창업보육센터 사무실은 연구소로 쓰고 있다. 박 대표는 “임상을 앞두고 인력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사무 공간을 넓혀 이전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창의성이 발휘되려면 몰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 걸맞는 업무방식이 필요하다”며 “기계적으로 일해서는 안되고 임직원 개개인이 몰입해 일할 수 있는 업무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직원들이 필요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재택근무도 자유롭다.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어디서든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외국 기업들과의 업무도 화상회의로 진행하기도 한다.
“2021년 코스닥 상장 추진”
하이센스바이오는 2021년께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잡고 있다. 박 대표는 “충치 및 시린이 치료제의 국내 임상2상과 글로벌 임상1상이 이뤄지는 시점에 코스닥에 상장해 자금조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이센스바이오는 잇몸질환 진단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잇몸에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진단지를 대면 색깔이 변하도록 해 특정 잇몸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여부를 알려주는 진단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관련 기술의 특허도 등록했다. 박 대표는 “잇몸질환은 소리없이 다가오는 질환이어서 문제를 인식했을 때는 질환이 한참 진행된 뒤인 경우가 많다”며 “일반인들이 손쉽게 잇몸질환을 진단할 수 있도록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상아질 처럼 재생이 잘 되지 않는 인체 내 잠자는 세포를 깨우는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박 대표는 “상아질뿐 아니라 신경세포 심장근육세포 멜라닌세포 등도 재생이 잘 안되는 인체 세포”라며 “이들 세포를 깨워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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