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기계에 쉽지만, 인간에게 쉬운 일은 기계에 어렵다.” 인간과 기계(로봇, 컴퓨터)의 능력 차이를 함축한 ‘모라벡의 역설’이다. 50년이 흐른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도 바둑판에 돌을 얌전히 놓는 일은 사람에게 의존했다.
사람에겐 별일 아닌 표정 읽기, 느끼기, 의사소통, 계단 내려가기, 수건 개기 등에서 기계는 여전히 헤맨다. 수십만 년간의 진화를 통해 갖게 된 인간의 암묵적 능력은 간단히 재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힘들고 불유쾌하고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에 취약하다.
사람과 로봇의 장점만 골라 결합하면 어떨까. 그 접점이 간병 분야다. 중증환자를 간병해 본 사람이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잘 알 것이다. 수시로 살피고, 수발 들고, 대소변을 받아내다 보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그런 일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24시간 할 수 있는 로봇에게 맡기면 어떨까.
세계 최고령 국가(65세 이상 27.7%) 일본에서 ‘간병 로봇’이 본격 보급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자가 급증하는 일본은 2030년 간병인력 860만 명(현재 130만 명)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일할 사람도 부족해 취업자의 10%가 넘는 간병인 부족분을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복안이다.
일본의 간병 로봇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간병 로봇 개발업체가 약 100곳에 이르고 소니의 ‘아이보’, 로보틱스의 ‘페퍼’ 등 상용화된 것만도 15종이다. 사이버다인의 ‘할’처럼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돕는 로봇 슈트도 있고 반려 로봇, 이동지원 로봇, 식사보조 로봇 등도 나왔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간병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환자의 대소변 처리인데, 배변용 로봇이 이를 대신한다. 이 로봇은 내장된 센서를 통해 환자의 대소변을 감지한 뒤 공기압으로 배설물을 흡입하고 비데, 건조까지 자동 실행한다. 한국업체 큐라코가 개발한 배설케어 로봇이 외국 업체로는 유일하게 일본 개호보험(건강보험) 복지용품에 등록돼 있다.
맹점도 있다. 로봇은 힘든 일도 척척 해내지만, 주어진 경로를 벗어난 돌발상황 대처에는 취약하다. 환자의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다.
빠르게 고령화되는 우리나라도 간병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처음 간병 로봇 예산이 편성됐고, 전남 광양에선 배설케어 로봇 시범사업도 시작됐다. 아직은 개발업체가 소수이고, 규제에 발목이 잡힌 경우도 있다.
‘폴라니의 역설’대로 기계가 사람이 할 일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AI ‘왓슨’이 의사의 진단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주듯, 간병 로봇이 고령화 시대에 더 나은 삶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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