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6,7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8’엔 전 세계 40개국에서 3072명이 다녀갔다. 참석자들은 “콘텐츠면에서 세계 최고의 포럼”, “산업계와 교육계, 학계가 만나는 산학협력의 장 그 자체”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한국경제신문은 인재포럼을 빛낸 명연사들의 통찰과 혜안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시보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8’ 코너를 마련했다. 포럼 기간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때 ‘만족스러운 발표자’ 항목에서 상위권에 든 연사들의 강연을 매주 한편씩 소개한다.
‘글로벌 인재포럼 2018’에서 청중들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국내 연사 중 한명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였다. 서강대 재직시절 최 교수는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강연 및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모토로 2015년 설립된 교육기관 건명원의 초대 원장을 맡기도 했다. 국내 인문·과학·예술 분야 석학들이 모인 건명원은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도전적인 교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로벌 인재포럼 2018’에서 최 교수는 ‘기술혁신에 따른 불평등을 극복하는 인간 가치’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주제발표를 맡았다. 이 세션은 글로벌 인재포럼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된 인문학 세션으로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기술혁신’, ‘불평등’, ‘인간가치’ 이 세 가지 개념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최 교수는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인간은 무엇인가를 해서, 혹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고 전제 한 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지만, 누군가는 야기된 변화를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명제는 윤리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즉 ‘윤리를 생산하는 자’와 ‘기존의 윤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기술혁신과 불평등의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평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오히려 문명의 진화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불평등에 대한 관념이 우리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져 머릿속에 심어진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다른 문명이 생산한 지식과 관념을 받아들이고 확대 재생산하는 데 그쳤던 종속성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해야 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불평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기술혁신을 가로막은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드론 산업을 언급했다.
“드론이 처음 생길때 한국의 기술력은 중국보다 훨씬 앞섰을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있는 윤리관, 이미 있는 규정으로 아직 있어 본 적이 없는 드론을 제압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중국은 그 윤리나 규정으로 먼저 대하지 않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윤리 규정을 기다리면서 드론을 마음껏 날게 했어요. 그 결과 세계 드론시장의 60~70%를 중국이 장악했어요”
끝으로 최 교수는 “익숙한 불평등 관념으로 있어 본적 없는 일을 다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정치적 아젠다 혹은 윤리적 콘텐츠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자체를 자각하는 매우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 불평등 관념은 자연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이라며 “기술은 지금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반론을 내놨다. 최 교수는 “연명의료의 예에서 보듯 기술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인간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의 기술 개발은 폭주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