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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목숨 건 투쟁 끝에 탄생한 '최초의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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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탄생


[ 유재혁 기자 ] 1945년 9월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물러난 직후라 배송되지 못한 화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역장은 화물을 점검하다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적힌 상자를 발견했다. 내용물을 본 역장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1929년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의 결실인 2만6500여 장 분량의 원고지가 조선어학회로 돌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33명의 한글학자를 체포하고 증거물로 원고를 압수한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킨 지 약 3년 만의 일이었다.

요즘 상영 중인 영화 ‘말모이’에 나오듯, 그 원고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만나 지방마다 사용하는 언어들을 집대성한 자료였다. 조선어학회는 2년 뒤 ‘조선말큰사전’을 발간했다. 이전에도 학자가 개인적으로 만든 우리말 사전이 있었지만, 이 사전은 많은 학자가 참여해 함께 내놓은 결과물이란 점에서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말의 탄생》은 조선말큰사전이 탄생하기까지 50년간 사전 편찬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조명했다. 전통문법학의 그릇에 근대 문법학을 담은 이봉운, 종두를 배우기 위해 조선어를 연구한 지석영, 근대국어학의 대부 주시경, 조선어학회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명균, 평생 모은 사전 원고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한 이상춘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어 말살정책에 따라 우리 말과 글이 외국어처럼 등한시되거나 잊혀졌다. 일제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조선어 필수, 일본어 필수’, ‘조선어 선택, 일본어 필수’, ‘조선어 폐지, 일본어 필수’ 수순을 밟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조선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조선어학회 회원으로서 우리말 사전 편찬의 주역이었던 이극로 선생은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니, 정신과 생명이 있으면 그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봉 지음, 책과 함께, 376쪽, 1만65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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