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취미백서
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6) 카트
'모터스포츠의 첫 발' 카트
스포츠와 레이싱카트로 분류…일부 제외 보통 휘발유로 달려
안전수칙 익히고 헬멧 착용해야
레이싱의 기초 배울 수 있어
시속 60~100㎞지만 체감은 더 빨라…더 달려볼까 방심하다 '스핀 굴욕'
"카트는 범퍼카와 다르다니까요"
[ 이우상 기자 ]
“카트라고? 그거 범퍼카 같은 거 아냐. 그게 무슨 취미냐.”
카트를 이 코너에 소개하겠다고 하니 부장이 보인 반응이다. 평소 같았으면 ‘찍’ 소리도 못 냈겠지만 이번만큼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카트야말로 ‘진짜 내 취미’이기 때문이다. 내 자존감을 건드린 건 그의 실수였다. “카트가 시속 얼마나 나오는지 아세요? 100㎞까지 나오는데요.” 속으로는 더한 생각도 했다. ‘어디 범퍼카와 비교해. 무식하게.’ 하지만 이 말은 하지 않았다. ‘강력한 반발’에 그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래. 다치지 말고 다녀와라.”
범퍼카와는 다르다!
나의 홈그라운드는 강원 속초에 있는 잼버리카트장이다. 사장님이 인심이 후한 데다 장인정신으로 카트를 관리해 상태가 좋다. 하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다. 서울에서 가깝고 국내에서 코스가 가장 길다는 경기 파주 스피드파크로 향했다. 새해 첫날 카트를 타러 가는 길엔 다른 기자 두 명이 동행했다. 한 명은 한 번 타봤고, 다른 한 명은 오락실에서 즐기는 레이싱 게임만 해봤다고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카트는 범퍼카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부 카트장을 제외하면 보통 휘발유를 태우는 엔진으로 움직인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타는 2인승 카트도 내 취미인 카트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카트장을 찾으면 보통 스포츠카트와 레이싱카트를 만날 수 있다. 스포츠카트는 시속 60㎞, 레이싱카트는 시속 100㎞ 이상 나온다. 이 때문에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헬멧 착용은 당연히 의무다.
카트의 민첩성은 웬만한 승용차를 뛰어넘는다. 지난해 넥센스피드레이싱 BK 원메이크 클래스에서 시즌 챔피언을 딴 김재우 선수는 “스포츠카트만 타더라도 포르쉐를 몰고 달릴 때보다 더 강한 횡가속도(횡G)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횡G’는 코너를 돌 때 몸이 차 밖으로 튀어 나갈 듯한 느낌을 말한다. 카트 자체가 무게중심이 낮은 데다 마찰력이 높은 슬릭 타이어(주름 없는 타이어)를 사용해 포르쉐 같은 고가 스포츠카를 몰 때보다도 더 강한 원심력을 견딜 수 있다는 얘기다.
카트는 곧 모터스포츠의 첫발
카트 타기가 취미였지만 처음 온 곳이라 낯설었다. 그래서 첫 주행은 ‘만만한’ 스포츠카트로 했다. 직선 구간이 250m 정도 되기 때문에 최고 속도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다. 최고 속도가 시속 60㎞라고 하면 느린 속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엉덩이에서 지면까지의 거리가 10㎝가 안 되기 때문에 체감 속도는 훨씬 더 빨랐다. 문제는 추운 날씨였다. 노면도 타이어도 모두 차가웠다. 두 바퀴째에서였을까. 180도 도는 헤어핀 코스에서 뒷바퀴를 브레이크로 잠그고 살짝 미끄러트리며 빠르게 돌려고 했는데 그만 카트가 몇 바퀴 돌아버렸다. 자만과 욕심이 부른 결과였다.
코스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레이싱카트로 갈아탔다. 카트를 3년째 타고 있지만 레이싱카트는 처음이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마자 만난 250m 직선 코스. 가속 페달에 준 힘만큼 목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힘을 뺐다간 그대로 목이 뒤로 꺾일 것만 같았다. 가속 페달을 1㎝만 밟아도 13마력의 야마하 엔진은 야수 같은 소릴 내며 카트를 앞으로 튕겨냈다. 호랑이를 쓰다듬듯 섬세하게 다뤄야만 가속력을 조절할 수 있다.
가속 페달보다 더 다루기 힘든 것은 브레이크였다. 브레이크를 조금만 무리해서 밟으면 바퀴가 잠기고 그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즉각 풀지 않으면 시동이 꺼져버렸다. 겨울철 승용차를 몰다 보면 가끔 브레이크 페달이 바르르 떨 때가 있는데 ABS(잠김방지브레이크시스템)가 작동해 브레이크가 잠기는 것을 막았다는 뜻이다. 카트에는 이런 기능을 하는 ABS가 없다. 빨라진 속도만큼 코너 앞에서 브레이크를 섬세하게 다루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바퀴가 잠겨 미끄러지면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야 한다니. 머리로는 알아도 발은 어느새 브레이크를 ‘죽어라’ 밟고 있어 시동은 거듭 꺼졌다. 브레이크가 잠기고 세 번째 스핀을 했을 때 황금 같던 10분의 주행 시간이 끝나버렸다. 가르릉거리는 엔진을 뒤로 한 채 카트에서 내리며 든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하루 날 잡고) 다시 와서 널 정복해줄게.”
카트를 탄 시간은 단 20분.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아직 온몸이 쑤신다. 몸을 지지해주는 벨트 없이 가속도를 맨몸으로 견디고 뻑뻑한 운전대를 돌리느라 온 근육에 힘을 준 탓이다. 카트가 ‘모터스포츠의 첫걸음’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외치고 싶다. “카트는 범퍼카와 전혀 다르다니까!”
파주=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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