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고비'는 평생 친구…각종 위기 때 해결사 역할도"
아홉 살부터 광주서 유학생활
배움 강조한 어머니 덕에 공부 매진…대학시절 데모현장 아닌 도서관 택해
군 제대 후 은행서 나와 공직 생활
치열했던 관료생활 '인생의 재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실장 맡아, 연일 밤새우며 회의하고 대책 마련
유지창·진동수·김석동 세 분은 가장 큰 영향을 준 '선배이자 스승'
"세상 어떤 일도 혼자 해결 못해"
무죄 판결 났지만 고통스런 기억…부산저축銀 사태로 수감돼 고생하기도
많은 책 읽으며 다양한 시각 갖게 돼
[ 정지은 기자 ]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61)은 평생 ‘고비’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고 했다.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금융 관료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도. “매 순간 고비가 찾아왔고 그때마다 온 힘을 다해 눈앞의 과제를 풀고자 애썼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만석집에서 만난 김 회장은 “식당 이름처럼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느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그는 “만석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고향인 전남 보성엔 먹거리가 다양하긴 했지만 크게 풍족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가 만석집을 안 것은 농협금융 회장에 취임한 지난 4월이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시골 밥상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시골 밥상은 언제 먹어도 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죠.” 새콤달콤한 꼬막무침과 홍어삼합,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고들빼기김치 등 남도에서 올라온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곁들여 나온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웠다.
아버지는 농협 근무…어머니, 늘 배움 강조
김 회장의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한 음식은 고들빼기김치였다. “고들빼기는 보성에서 가장 많이 나는 나물입니다. 입맛이 없을 때는 쌉쌀하면서도 알싸한 이 맛이 끝내줍니다.”
“고들빼기처럼 농협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아버지가 농협에 다니며 4형제를 키우셨거든요. 4형제 모두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라고 광주 작은아버지 댁으로 유학도 보내주셨어요.”
4형제 중 장남이던 그는 가장 먼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는 이때를 인생의 첫 번째 고비로 꼽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홉 살 무렵이었다. 돌연 ‘더 큰 동네에서 열심히 공부해보라’는 어머니 말씀에 광주로 전학 갔다. “등을 떠밀렸죠. 토요일이 되니까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차비를 구해서 3시간가량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 혼쭐이 나고 곧장 발걸음을 돌려 광주로 돌아갔죠.”
삭힌 홍어회에 돼지고기 수육과 신김치를 얹어 먹는 홍어삼합은 만석집의 대표 메뉴로 꼽힌다. 김 회장은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여보자며 잔을 들었다. 홍어회의 톡 쏘는 맛에 막걸리의 탄산감이 더해졌다. “이런 건 어릴 때 구경하기 힘들었습니다. 대학 마치고 돈 벌기 시작하면서 먹었지요.” 서울대에 입학한 첫해엔 학회에 들어가 책에 묻혀 살다시피했다. 1978년 대학 3학년이 되던 해 유신 반대 시위가 대학에서 본격 시작됐다. 김 회장은 “시위엔 참여하지 않았다”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여파로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져 9월 복학했을 땐 외환은행에서 직원을 뽑고 있었다. 홀린 듯 원서를 넣었고, 외환은행은 그의 첫 직장이 됐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가면서 그는 다른 결심을 했다. 김 회장은 “하고 싶은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1순위가 공무원, 2순위는 교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1982년 행정고시 1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이듬해 1~3차를 한꺼번에 통과했다.
각종 위기 때마다 차출돼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에서 일하면서 그의 공직생활이 본격 시작됐다. 때마침 기회를 얻어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에서 국제행정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정부가 한국 공무원에게 ENA에서 공부할 기회를 줬는데 그 첫 번째 기회를 제가 잡았죠.”
프랑스에선 ENA 출신에게 부지사 수습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김 회장도 ENA 교육을 계기로 3개월간 이블린주 부지사 현장 수습을 했다. “ENA에서의 배움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큰 경험이 됐습니다.”
잠시 막걸리로 목을 축인 그는 꼬막을 서너 점 크게 집어 맛본 뒤 말을 이어갔다. 금융관료 시절 그는 1997년 외환위기, 1999년 대우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모두 겪었다. 당시 금융정책과장이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함께 위기 해결에 앞장선 핵심 관료로 꼽힌다. 김 전 위원장이 대책반장이라면, 김 회장은 현장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을 맡아 합리적으로 일을 잘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말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세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위기 해결을 위해선 관련자가 모두 머리를 맞대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옷에서 옛날 신문을 꺼냈다. 1998년 6월 동남 동화 대동 충북 경기 등 은행 5곳이 문을 닫은 날의 한국경제신문 보도(사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신문에서 접한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당시 상황실장을 맡아 연일 밤을 새우며 회의했다”고 말했다.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진 않냐”는 질문에는 “관료시절 경험은 인생의 큰 재산”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모피아라는 말이 좋은 자리를 꿰차고 과실만 따먹는다는 부정적 의미가 크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진정성 있게 일하는 관료도 많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료시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3명을 꼽아달라는 말에 그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유지창 전 산업은행 총재와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이름을 댔다. 김 회장은 이들을 ‘선배이자 스승’이라고 했다. “유 선배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을 할 때 사무관으로 있었는데 따뜻한 인품에 감동했지요. 진 선배와 김 선배는 논리적이고 지침이 명확해서 업무를 많이 배웠고요. 제 스승들입니다.”
젊은 직원들에게 경험 많이 쌓을 것 당부
고비는 끈질기게 찾아왔다. 그는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 구속돼 290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아 당시 금융정보분석원장(FIU)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2013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했지만 그에겐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10년 일기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7년째 짧든 길든 매일 잠들기 전 일기를 쓰고 있다. 수감 시절 일기에는 선후배들에게 받은 편지도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인생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공정, 배려, 경험으로 꼽았다. 그는 “세상 어떤 일도 결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공정하게 접근하고 바라보되, 함께 일하는 동지를 배려하는 마음을 잃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새로운 동지’가 된 농협금융 직원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젊은 직원들을 위한 조언으로는 “경험만큼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며 “여행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농협금융 회장에 선임된 이후 ‘농협인’으로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보고서 문화를 없애고 토론 문화를 만들었다. 보수적이고 의사소통 결정이 늦은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다. 회장 보고 때도 회장과 실무자가 토론을 벌인다.
농협금융은 내년에 사상 최대 순이익(1조5000억원)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머리를 맞대면 못 해낼 게 없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직원들과 열심히 뛸 겁니다. 물론 예기치 않은 고비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또다시 잘 헤쳐나갈 겁니다.”
■약력
△1957년 전남 보성 출생
△1976년 광주제일고 졸업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외환은행 입행
△1983년 행정고시 합격(27회)
△198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1991년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 국제행정학과 졸업
△1994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법규과장
△2001년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2001년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2008년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2009년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2011년 금융정보분석원장
△2014년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18년 농협금융 회장
■농협금융은…
농협금융은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용부문과 경제부문을 분리하면서 신용부문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출범했다. 농협금융은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손해보험, NH투자증권, 농협캐피탈, NH저축은행, 농협리츠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등 8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자산 규모는 416조원으로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작지만 은행 점포망이 다른 금융지주 소속 은행을 압도한다. 농협은행 점포는 1147개로 국민은행 KEB하나은행보다 많다. 여기에 지역 농협이 운영하는 점포까지 합하면 점포망에선 국내 최대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농협금융의 전체 이용자는 3000만 명에 달하며 지역 농·축협을 포함한 금융 네트워크는 전국 6000여 개다.
■김광수 회장의 단골집 만석집
톡 쏘는 홍어삼합에 꼬막무침 일품
톡 쏘는 홍어삼합에 싱싱한 꼬막무침, 고등어구이, 된장찌개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산 식재료로 조리하는 한식 전문점이다. 시골 밥상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식당 경력 30년 된 사장이 2003년부터 15년째 운영 중이며, 고들빼기김치 하나까지 손수 담근다.
이 집의 메뉴는 정식과 단품 메뉴로 나뉜다. 정식은 살이 오른 싱싱한 고등어구이를 중심으로 고들빼기김치에 노릇하게 부친 호박전과 홍어전, 버섯무침 등 반찬이 나온다. 쌀밥에 온갖 반찬을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점심에는 1인당 1만4000원, 저녁에는 1만5000원에 판매한다.
저녁에는 홍어삼합, 꼬막무침, 돼지고기 두루치기 등을 각 3만원에 판매하는 단품 메뉴가 인기다.
막걸리 안주로 이만 한 게 없다는 게 주변 직장인들의 평가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산낙지가 먹고 싶을 때는 하루 전 전화로 예약하면 ‘맞춤식’으로 제공해주기도 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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