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규모 뒤샹 회고전
22일 국립현대미술관서 개막
설치·회화 등 150여 점 선봬
[ 은정진 기자 ]
“내게 어려운 점은 지금 이 시대 대중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죽은 후 50년 혹은 100년 후 대중을 기다리고 싶다. 이들이야말로 내 관심을 끄는 이들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이자 아이콘인 마르셀 뒤샹(1887~1968·사진)이 남긴 말이다. 1968년 타계한 지 정확히 50년 만에 그의 작품들이 대중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마르셀 뒤샹 전’을 22일부터 내년 4월7일까지 서울 광화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 2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뒤샹 전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역대 최대 규모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회화, 레디메이드, 혼합매체, 조각 23점과 드로잉, 판화 20점 등 총 150여 점을 선보인다.
뒤샹은 20세기 미술계 공식이나 관례를 깨며 생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지만 현대에 와서 미적 창조와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뒤샹의 삶에 따른 작품 변화를 총 4부로 나눠 소개한다. 1부에선 청소년기이던 1902년부터 화가로 이름을 알린 20대 중반까지 8년 동안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프랑스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한 작품을 전시한다. 이 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를 주목해 볼 만하다. 전시회 해설을 맡은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통상 수동적인 모습인 기존 누드 형상 대신 기계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누드를 묘사한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2부는 회화기법을 버리고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으로 재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레디메이드 작가’로서 삶을 조명했다. 레디메이드는 그가 처음 창조해낸 현대미술의 미적 개념이다. 변기, 술병걸이, 자전거 바퀴, 삽 등을 예술품으로 만든 데서 시작됐다. 2부에 국내 최초로 전시되는 작품 ‘샘’은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다. 1917년 원본을 그가 1950년 다시 만든 복제품으로, 현존하는 ‘샘’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눕혀놓은 남성 소변기에 본인의 가명 사인을 한 게 전부다. 이 연구사는 “작품의 희소성에 가치를 두지 않았던 그는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소변기로 ‘샘’을 다시 제작했다”고 말했다.
3부에선 1920~1930년대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뒤샹이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시기를 담았다. 여장한 뒤샹 본인의 사진과 회전하는 광학기계, 미니어처 복제판을 담은 가방을 선보인다. 4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한 새로운 예술 개념)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작업한 작품을 소개한다.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 미술관장은 “뒤샹을 이해하지 않고는 20세기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가 남긴 유산이 유용한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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