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로버트 갈루치 前 미국 북핵특사
"美·北 서로 믿지 않지만 대화 원해…2차 회담 내년 1, 2월 열릴 듯
영변 핵시설 폐기하면 美·北 연락사무소 등 정치적 고려 필요
韓·美 동맹 균열 우려 상당해…문재인 대통령도 민감성 잘 알 것
남북정상회담은 전쟁 가능성 줄여…김정은 서울 답방 바람직
한국 정부의 한미연구소 폐쇄엔 모욕감…워싱턴에 우려 남겨"
[ 주용석 기자 ]
북한 비핵화 협상이 겉돌고 있다. 지난달 8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뉴욕 회담’이 취소된 뒤 한 달 넘게 고위급 후속 협상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1년 넘게 언급을 자제했던 북한 인권 문제까지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내년 1, 2월 만나겠다”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 국무부 북핵특사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는 “비핵화 협상이 실패하고 체제 보장이 안 되면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을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시간끌기를 통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 갈루치 교수를 지난 14일 워싱턴DC 연구실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내년 1, 2월에 열릴 수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둘 다 만나고 싶어 합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의 카운터파트를 만나진 못했지만, 미·북 관계가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사실 (미·북) 실무협상의 일부는 한국이 (중재자로서) 대신해온 측면도 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수 있다고 보십니까.
“장담할 순 없지만 미국이 북한 입장에 좀 더 다가갈 걸로 봅니다. ‘행동 대 행동’이라 부르든 ‘상호주의’라 부르든 북한은 과거처럼 주고받기식 협상 틀을 원합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화가 진전되기 어려울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이 모든 걸 다 내놓아야 뭔가를 주겠다’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미국의 행보가 제재 완화일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제재 완화나 종전 선언, 궁극적으로 수교로 이어질 수 있는 연락사무소 설치가 그런 예입니다. 미국은 제재 완화 없이도 이런 ‘정치적 조치’를 통해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카드 게임으로 치면 미국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습니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겉도는 이유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 책임이 있습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안 하고, 미국은 군사옵션을 쓰지 않는 현재 상황에 둘 다 안주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가 실제 진전된 건 없습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갱도 파괴, 탄도미사일(발사 중단)은 진짜 딜(거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뭐가 진짜 ‘딜’입니까.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겁니다.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모두 없애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빅딜입니다. 북한은 (9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때) 한국을 통해 이 딜을 테이블에 올려놨습니다. 우선 영변 핵시설 폐기 후 다음 단계로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없애는 걸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신뢰합니까.
“물론 신뢰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확실히 북한을 믿지 않습니다. 북한도 미국을 믿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서로 믿지 못하는 두 사람이 거래를 할 수 있느냐’인데, 저의 답은 ‘그렇다’입니다. 미국은 과거 소련을 믿지 않았지만 소련과 여러 가지 거래를 했습니다. 검증할 수 있고, 투명성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면 말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했죠. 틀렸습니다. ‘(북한 문제는) 믿지 마라. 그러니 검증하라(Don’t trust therefore verify)’가 답입니다.”
▶김정은은 ‘핵무기는 나라를 지키는 보검’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나 리비아 카다피 정권 전복을 얘기할 때 농담하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체제보장만 된다면 정상 국가처럼 무역과 상업활동을 하고 외국 투자도 받고 경제개발도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아버지, 할아버지 때보다 높습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얻을 게 많습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단정하는 건 아닙니다. 북한을 무조건 봉쇄하기보다 대화 노력을 할 이유가 있다는 얘깁니다.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할 수 있느냐는 시도해보기 전엔 아무도 모릅니다.”
▶북한이 이른바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큽니다.
“파키스탄은 우리에겐 ‘가장 나쁜 악몽’입니다. 만약 (비핵화 협상이) 모두 엉망으로 끝나고 북한이 다시 안보를 우려하게 된다면 그들도 파키스탄 모델을 생각할 겁니다.”
▶한국 정부는 대화 진전을 위해 ‘북한이 핵무기 목록을 제출하기 전 종전선언 수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맞는 얘기라고 봅니다.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목록 제출을 원하는 건 (철저한) 비핵화를 위한 겁니다. 하지만 협상이 실패하면 그건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타깃 리스트’가 됩니다. 혹은 북한이 거짓으로 목록을 낼 수도 있습니다. 과거 걸프전이 끝난 뒤 무장해제를 위해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핵무기 목록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이라크가 낸 건 전부 조작된 내용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비핵화에 도움이 될까요.
“북한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대화하고 싶어할 겁니다. 한국은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체제보장)을 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남북한 정상회담은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통일 가능성을 높입니다. 김정은이 서울에 가길 바랍니다.”
▶북핵 문제 등에서 한·미 간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우려를 계속 해왔습니다. 북한은 늘 한·미 동맹을 틀어지게 하려고 해왔고요. 문재인 대통령도 이 문제의 민감성을 잘 알 겁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USKI)가 문 닫은 지 8개월이 흘렀습니다.(갈루치 교수는 당시 USKI 이사장이었다.)
“한국 정부로부터 모욕당한 느낌이었습니다. USKI가 재무적으로 불법이나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한국 정부가 주장한 건 잘못이고 사실도 아닙니다. USKI는 워싱턴에서 한반도 전문가를 훈련하고 방문객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왜 문을 닫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다시 그런 플랫폼을 만든다 해도 워싱턴에선 (한국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문을 닫을 것이란) 우려가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갈루치 前 미국 북핵특사는
1차 북핵 위기 봉합했던 '제네바 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72)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이른바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다. 북핵 동결의 대가로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경수로)와 원유를 제공하는 게 합의의 핵심이었지만 북한 핵 개발이 계속되면서 8년 뒤 합의가 파기됐다. 갈루치 전 특사는 미국 내에서 대북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온건파로 꼽힌다.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했다. 지난 5월 한국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의 마지막 이사장을 지냈다.
△1946년 뉴욕 브루클린 출생
△뉴욕주립대 졸업
△브랜다이스대 정치학 석·박사
△국무부 중동·남아시아 담당 국장
△유엔 이라크 핵무기사찰 특별위원회 부집행의장
△국무부 비확산·핵안전담당 선임조정관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
△1994년 북핵특사
△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USKI) 이사장
△현 조지타운대 교수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