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28년 동안 묵묵히 법원의 안전을 위해 일했던 법원보안관리대원 한 명이 퇴임합니다. 그는 정든 법원을 떠나기 전에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글을 하나 남겼습니다. 퇴임 전 작별인사를 겸해 올린 글은 법원 안팎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박재준 주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2일 오전8시33분에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법원을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 뒤 마침표의 개수에서 퇴임을 앞둔 그의 복잡한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 주사는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나 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살아낸 법원생활 28년’이었습니다.
법원보안관리대는 각급 법원에서 방호와 질서유지업무를 담당합니다. 법원 출입자의 신분확인과 위험물 소지 여부를 검사하고 위험물을 소지했을 시 퇴거 조치하는 등 일을 합니다. 일반인을 상대하는 일이 잦은 만큼 갖은 욕설과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박 주사는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의 버릇없는 보호소년들이 쌍욕을 해와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했습니다. 재판 당사자들이 무조건 ‘억울하다’며 욕설과 함께 자기주장만 내세워도, 말이나 행동을 꼬투리 삼아 애를 먹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박 주사는 스스로를 ‘동기도 없고, 기수도 없는, 소수직렬의 미관말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재 법원보안관리대원은 입사 후 10년 동안 별정직으로 근무 후 정규직 시험을 봐야 정식 9급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위는 낮지만 이들은 안전한 재판이 이뤄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박 주사는 법정 출입문에 검색대조차 없던 시절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칼을 든 채로 뛰쳐나오는 고소인을 맨몸으로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쓰러져 호흡곤란이나 의식불명 상태가 된 걸 발견하고 119 구조대를 불러 병원으로 보냈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박 주사는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다양한 군상의 인간을 만나면서 느낀 소회도 털어놓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중범죄자가 교도소로 향할 때, 고개를 숙인 채 법원을 떠나던 그 중범죄자의 어머니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가사법정에서 부부의 치열한 다툼을 보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파산법정에선 채권자보다 말이 많은 뻔뻔한 채무자들을 지켜보며 분노를 삼켰습니다.
박 주사는 정확히 34년7개월19일 동안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법원근무를 하기 전에 교도소에서 일한 것과 군대생활을 포함한 시간입니다.
오랜 세월 국가와 타인을 위해 힘쓴 박 주사는 이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며 은퇴 후 버킷리스트를 3가지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자전거로 4대강 등 국토종주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배우고 싶어도 못 했던 것들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연탄은행 기부와 배달봉사를 하고 있지만 봉사거리를 더 찾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의 자세는 어디 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박 주사의 아들도 법원서기보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나섰고 합니다. 글 말미에 박 주사는 “큰 허물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셨던 분들께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며 모든 사법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문득 박 주사님처럼 같이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사회를 위해 일하는 분들께 감사함을 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연평균 700여명의 경찰·소방관 등 제복공무원이 직무수행 중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고마운 분들을 뵐 때마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끝) /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