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조력자' 벤처캐피털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 황정환 기자 ]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VC) 한국투자파트너스(한투파)를 이끄는 백여현 대표(사진)는 “미국의 혁신이 시간차를 두고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에 전파된다”며 “남보다 먼저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선 그 흐름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을 선점한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VC의 생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 대표의 말처럼 운용자산(AUM)이 3조2000억원에 달하는 한투파는 올해 투자금 5000억원 가운데 45%가량을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등 국내 VC업계의 해외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2011년 베이징 법인을 설립하며 시작된 중국 투자뿐 아니라 이스라엘, 인도, 호주, 동남아시아 등 14개 국가에 투자를 했다. 중국 광둥성, 싱가포르 테마섹 등과 조성 중인 약 3000억원 규모의 중국·싱가포르 펀드 조성이 마무리되면 한투파의 해외투자 자산은 약 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외 투자를 불문하고 단독 투자보다는 공동 투자를 통해 ‘타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백 대표의 투자 철학이다. 지금까지 한투파의 투자 가운데 82%는 투자처 물색부터 엑시트(투자금 회수)까지 전략투자자(SI)나 현지 파트너와 손 잡고 이뤄진 공동 투자다. 백 대표는 “아무리 전문성이 높은 투자회사라도 어떤 산업의 리더나 현지 VC보다 해당 분야를 잘 알 순 없다”며 “공동 투자는 리스크는 줄이면서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해외 투자 성공 사례론 2015년 12월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투자한 호주 바이오기업 엘라스타젠을 꼽았다. 세계 최초로 튼살 치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트로포엘라스틴’을 생산한 엘라스타젠은 지난 2월 미국 보톡스 1위 기업 엘러간에 2억6000만 달러(약 2822억원)에 인수됐다. 투자 당시 500만호주달러(약 43억원)을 투자한 한투파는 원금 대비 약 12배의 투자 수익을 냈다. 백 대표는 “공동 투자자인 아모레퍼시픽은 투자 수익 외에도 엘라스타젠 제품의 한국·아시아 판권을 확보했다”며 “앞으로도 이처럼 파트너와 함께 성장할 기회를 꾸준히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 시대의 투자 전략은 ‘이 나라에 도입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내년 투자 전략을 물은 기자에게 한 백 대표의 답이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앤서니 탄이 우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 그랩”이라며 “미국발 혁신 전파의 흐름 속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미국에선 최첨단 기술기업에 투자하고 신흥국에선 ‘제2의 그랩’이라 불릴 미개척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벤처기업들에 대해 “아이디어는 많지만 규제에 막혀있다 보니 갑갑한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백 대표는 “사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안과 질환 여부를 가려내는 한 벤처기업은 개인정보 보호문제로 한국에서 연구를 못하다 보니 미국에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며 “기술 혁명 시대에 맞는 규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투자처로서의 한국 매력은 점점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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