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영의 재무설계 가이드
<69> 보험 충동구매
생명·손해보험 10건 중 2건
가입 후 1년 이내에 해지
판매인과 친밀감보다는
자신의 건강·소득 등 고려해
감성적 접근 말고 이성적 판단을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98.4%는 가구원 중 한 명은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가구당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가입 건수는 각각 3.7건에 달한다. 이쯤 되면 보험은 모든 가구의 필수 상품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가입한 보험 10건 중 2건은 가입 후 1년 안에 해지된다. 가입 후 2년 안에 해지되는 건수는 10건 중 3건으로 늘어난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입했지만 막상 가입하고 보니 매월 내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탓이다. 보험 가입 후 예상치 못하게 소득이 줄거나 다른 지출이 늘어나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지만 충동구매도 중도 해지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충동구매는 사전에 계획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계획 구매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계획 구매는 상품을 보고 그 상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뤄지는 데 비해 충동구매는 구매 결과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결국 충동구매는 사전에 구매 계획이 없고 결과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품을 즉각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보험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사전에 구매 계획 없이 감정에 치우치거나 불완전한 이성적 판단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다.
보험 충동구매가 어느 정도 일어나는지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다. 그러나 대면 채널과 은행 채널이 보험 판매 채널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충동구매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연구원의 보험소비자 조사(2018년)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대면 채널)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40대 이상은 95% 정도다. 30대와 20대도 각각 89.5%와 86.6%에 달한다. 여기에 은행원(은행 채널)을 통한 보험 가입자 비중(연령대별로 2~3%대)까지 더하면 판매인의 권유로 보험 충동구매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매우 많다. 대면 채널이나 은행 채널과 달리 보험회사 인터넷 사이트 같은 직판 채널을 이용하는 사람은 충동구매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해서 보험 상품 정보를 검색해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무계획적인 충동구매 가능성이 그만큼 덜한 것이다.
보험 충동구매를 이해하는 데 ‘상황 관여’라는 개념이 도움이 된다. 먼저 관여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관여는 특정한 상황에서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개인적 중요성 또는 흥미의 수준을 일컫는 말이다. 관여의 수준에 따라 고관여와 저관여로 나뉜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자동차와 관련한 것에 일단 관심을 갖는다면, 그 사람에게 자동차는 고관여 상품이다. 이와 달리 샴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면 샴푸는 저관여 상품이다.
보험은 일반적으로 고관여 상품으로 분류된다. 상품이 복잡해 선택하기 어려운 데다 장기간 유지해야 하므로 신중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보험이 고관여 상품이라면 충동구매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보험을 충동구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이 ‘상황 관여’다.
상황 관여는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것처럼 특정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나타난다. 보험 구매 상황에서 소비자의 상황 관여를 촉발하는 것은 내부적 자극과 외부적 자극이다. 내부적 자극은 소비자 스스로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에 이상을 느꼈거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 보험 구매 욕구가 나타나는 경우다. 외부적 자극은 보험 판매인의 권유가 대표적이다.
내외부 자극으로 촉발된 상황 관여는 감성적 관여와 이성적 관여로 구분된다. 보험 구매 상황에서의 감성적 관여에는 보험 판매인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려나 보험 구매로 인한 심리적 안정감 등이 포함된다. 이성적 관여로는 보험료와 보험금 수준 및 보험 해지 가능성 등에 대한 판단을 들 수 있다.
감성적 관여 및 이성적 관여 수준에 따라 상황 관여는 총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감성적 관여가 높고 이성적 관여가 낮은 유형이다. 이 유형이 보험 충동구매 가능성이 가장 높다. 둘째 감성적 관여와 이성적 관여가 모두 높은 유형이다. 이 유형의 보험 충동구매 가능성은 중간 수준이다. 셋째 이성적 관여가 높고 감성적 관여가 낮은 유형은 충동구매보다는 정보탐색을 더 하거나 의사결정을 신중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감성적 관여와 이성적 관여가 모두 낮은 유형은 보험 구매 가능성 자체가 매우 낮다.
보험은 자신의 건강, 가족관계, 자산, 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입해야 하는 고관여 상품이다. 보험 판매인 등의 감성적 접근을 경계하고 이성적 관여 수준을 높여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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