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소소위 들여다보니
푼돈 깎고 깎아서 겨우 1조 감액했지만
국회 증액분 다 반영하려면 14조 더 깎아야
실무자 쓰러질 정도로 밤샘 회의
文 의장은 “여야 합의안 가져오라” 압박
“감액도 제대로 못했는데 국회의원들의 증액 요구를 어떻게 반영하나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 요구 반영될 틈이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470조 5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증·감액을 결정할 국회 심사과정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묻자 한 국회 관계자는 이 같이 토로했다. 정부가 결정한 예산규모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증액을 하려면 그만큼 삭감을 해야 하는데 감액심사 속도가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다. 여야가 4조원 규모의 세수결손 충당 대책, 남북경제협력, 일자리 예산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정쟁을 하느라 내년도 예산안 심사 전체가 발목잡히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조 감액했는데…상임위는 10조 증액요구
현재 국회 예산심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여야 간사·기획재정부 관계자만 참여하는 ‘소(小)소위원회’(소소위)로 공이 넘어가 있다. 국회법상 규정된 비공식 기구이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도 불가한데다 속기록도 남지 않는 ‘깜깜이 심사’에 접어든 것이다.
소소위는 누가 어떤 이유로 예산항목의 증액을 요구했는지가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여론의 질타가 매년 있어온 회의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매년 소소위를 가동한 것은 예산심사 속도만큼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3일 예결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소소위는 감액 심사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라면 예산소위가 지난달 28일까지 감액을 모두 결정한 다음 소소위는 증액만 결정하는 것이었다. 예산소위가 10일도 채 되지 않은 심사기간 때문에 감액규모를 모두 결정짓지 못하고 소소위로 공을 떠넘긴 것이다. 예산소위가 마무리짓지 못한 감액심사까지 소소위가 챙겨야 하다보니 심사 속도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회의 배석자는 “소소위가 지난 1일부터 새벽 3~4시 넘는 심사일정으로 강행군을 하다 보니 모든 회의 참석자들이 지쳐있는 상황”이라며 “기재부 과장급 직원 한 명은 아예 과로로 쓰러졌다”고 전했다.
문제는 예산소위와 소소위가 1주일 가량 매달려서 감액을 결정한 것이 1조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결위 핵심 관계자는 “정부가 5000억원 규모로 산업은행에 출자하려던 것을 야당 요구로 1000억원 삭감했고 나머지는 몇억, 몇십억원 씩 삭감한 것을 합쳐서 겨우 1조원 정도 삭감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류세 인하 등으로 발생한 세수결손이 4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라며 “국회 각 상임위가 증액해달라고 한 10조원을 다 반영해주려면 모두 15조원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예결위 관계자는 “이미 법정 기한을 지난 만큼 여야 합의로 예산심사 기한을 더 확보해도 고작 몇일 정도일텐데 의원들이 밀어넣은 증액 요구를 다 반영하기 위해 15조원까지 삭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올해는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반영 민원을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늘 예산통과 안된다고 큰일나나”
상황이 이런데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예산안 처리를 선거구제 개편과 연계 협상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어 꼬일대로 꼬인 예산국회의 해법이 간단치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3정당들이 2020년 차기 총선에서 군소 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주장하면서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여야 대표들과 함께 국회에서 정례 오찬하는 모임인 ‘초월회’에서는 각 당 입장 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현실적으로 오늘까지 예산안이 통과 안 됐다고 큰 난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협치는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혁은 동시에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예산 처리의 법정시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제도 문제도 긴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원내 1, 2당은 예산안 처리와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연계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0년간 정치를 했는데 선거구제를 연계시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고,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예산안은 예산안, 선거구제는 선거구제”라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국회가 법정 시한인 지난달 30일까지 예산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을 본회의에 자동부의한다는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를 들어 여야를 압박했다. 문 의장은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 상황에서 의장으로서 아무런 조치도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3일까지 여야 합의가 안되면 단 한 명이 모이더라도 예산안 원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여야를 압박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국회의장과 합의할 경우 예산안 법정시한을 며칠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적용하려면 여야가 합의부터 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박종필/김소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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