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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브렉시트로 불확실성 커졌지만 세계 5위 경제대국 안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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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 유럽대륙 전통적 불신…'자율권 되찾자' 슬로건에 호응"

스미스 대사의 한국 생활
올해 3월 부임인데 6개월前 도착…한국어 공부하고 해인사 템플스테이
'삼대' '무정' 등 한국문학 탐독…한식 중엔 더덕구이 맛에 매료

"한국인들 아직 영국 잘 몰라"
영국음식 맛 없다는 건 옛말…지금은 글로벌 요리 경연장
자동차 年150만대 생산하고 미래車·첨단산업 투자 많아
한국기업과 협력 기회 많을 것



[ 설지연 기자 ]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든 11월 중순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를 서울 덕수궁 옆 주한 영국대사관저에서 만났다. ‘맛있는 만남’ 인터뷰를 요청하자 스미스 대사는 즐겨 찾는 음식점이 아니라 대사관에서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영국 전통 저택 느낌의 고풍스러운 관저에 들어서자 스미스 대사는 방 곳곳을 소개하며 “1890년대 지어진 건물이 1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알록달록 멋진 가을 색으로 바뀐 관저 정원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휴식이 됩니다. 멋진 모습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맛있는 영국 치즈 못 구해 아쉬워요”

대사관에서 준비한 음식은 영국식 코스 요리였다. 전채요리로 삶은 달걀을 다진 훈제연어로 감싼 뒤 튀긴 ‘스카치 에그’가 나왔다. 스미스 대사는 “보통 스카치 에그는 다진 소시지를 쓰지만 이건 특별히 연어로 만들었다”며 “스코틀랜드에서 연어가 많이 난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선 간식이나 손으로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로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달걀의 고소함과 연어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흔히 ‘영국엔 맛있는 요리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을 꺼내자 스미스 대사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국 음식은 확실히 맛이 없었습니다. 그땐 생존하기 위해 먹었죠.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영국에 더 많은, 서로 다른 인종이 모여 살게 됐고 음식 맛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제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됐죠. 미쉐린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이 여럿 생겼고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등 스타 셰프도 나왔습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음식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곧바로 영국 치즈를 얘기했다.

“한국 생활을 매우 즐기고 있고 대사직을 수행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지만 맛있는 영국 치즈를 구할 수 없는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영국엔 아주 다양한 체더치즈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와인 한 병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어떤 와인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듯이 체더치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어 “부드러운 맛의 블루치즈인 스틸턴치즈도 좋아하는데 이런 훌륭한 치즈를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며 “영국 치즈가 한국에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대사는 영국에선 볼 수 없는 한국 음식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더덕구이를 좋아한다”며 “인사동 식당에서 두부, 파전 등이랑 같이 먹었는데 독특하고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메인 요리로 로스트비프와 요크셔 푸딩이 감자, 당근, 방울양배추 등 구운 채소와 함께 나왔다. 요크셔 푸딩은 밀가루에 우유, 달걀을 넣어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구워내는 빵 종류다. 스미스 대사는 “이것이 바로 영국 콤비네이션”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뒤에도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영국은 요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25일 유럽연합(EU)과 영국은 20여 개월 동안 이어져온 브렉시트 협상을 마무리 짓고 영국의 EU 탈퇴 조건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오는 11일 영국 의회의 비준 절차를 앞둔 가운데 야당은 물론 여당인 보수당 강경파 내부에서도 합의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대파들은 내년 3월29일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영국의 EU 투표권이 사라지는데 최소 2020년까지 유럽 관세동맹에 남아야 한다는 데 불만이 크다. 브렉시트의 의미를 반감시킨 타협이라는 주장과 함께 국가 주권을 포기한 것이란 비판론이 거세다.

스미스 대사는 “영국은 다른 유럽 대륙 국가들과 달리 EU에 복잡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유럽공동체(EEC)가 만들어졌을 때 영국은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가 1972년에야 합류했습니다. 이후 영국에선 여러 모습이 나타났죠. 영국을 유럽공동체의 일부로 느끼는 이들도 있는 반면 그들과는 뭔가 다르다고 느끼고 불편해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진행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52%가 EU 탈퇴를, 48%가 잔류를 택했는데 이 자체는 나올 법한 결과였지요.”

그는 당시 단순하지만 다수의 국민을 움직인 슬로건 ‘통제권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를 언급했다.

“많은 영국인은 EU에서 결정되는 사안들이 영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껴온 영국인의 절망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불만의 많은 부분은 EU와는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가령 교육의 질이나 의료보험, 대중교통 등에 대한 것인데, 이런 것들이 브뤼셀(EU 본부)에서 결정되는지, 런던에서 결정되는지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죠. 분명한 건 영국인의 의견이 EU 의회에서 적극 반영되지 못했고 그렇다 보니 EU를 영국 의회보다 덜 민주주의적인 곳으로 인식했습니다.”

‘시티오브런던이 브렉시트로 유럽 금융허브 지위를 뺏기고 있다’는 지적에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걸 부정할 순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긍정적인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런던에 본사를 두려 하고 있고 유니레버도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기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영국에 남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런던이 아직도 투자를 유치하고 비즈니스하기에 매력적인 곳이란 얘기입니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고 브렉시트 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한국과 첨단분야 협력 기회 만들 것

디저트로는 달콤한 스티키 토피 푸딩이 나왔다. 말린 대추야자 열매를 곱게 다져 넣은 스펀지케이크에 진한 캐러멜 맛의 토피 소스가 얹어진 잉글랜드 북부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스미스 대사는 “어렸을 때부터 먹던 전통음식”이라며 “오늘은 특별히 아이스크림도 같이 나왔다”고 했다.

스미스 대사는 올해 3월 한국에 대사로 부임하기 6개월 전 미리 서울로 와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어학연수 기간 한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리한 노트를 꺼내 보여줬다. 여러 사진과 기차표, 박물관 티켓, 직접 스케치한 그림 등이 두꺼운 스크랩북에 담겨 있었다. 스크랩북을 넘기다 보니 “공양물에 대하여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멋진 한글 필체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템플 스테이를 하러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찾았다가 적어놨다고 했다. 그는 ‘공양물’이 음식을 뜻한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해인사와 강화도 전등사에 머문 적이 있는데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전등사는 올해 8월 두 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같이 갔는데 한여름의 더위도 잊게 하는 아름다운 경관이었죠. 절의 정적과 종소리도 참 좋았습니다.”

스미스 대사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염상섭의 《삼대》 등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요샌 이광수의 《무정》을 느릿느릿 읽고 있다”며 “얼마 전엔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도 읽었다”고 말했다. 스미스 대사는 영국 외무부 동북아·태평양국 심의관일 때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영국이 평양에서 대사관을 개관할 당시 태영호 공사를 만난 적 있는데 당시 저도 외무부에서 북한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가 평양 외무성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흥미진진했죠.” 스미스 대사는 하지만 서울에서는 태 전 공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스미스 대사는 임기 동안 영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영국에서 더 이상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한국인을 만날 때면 정말 놀라곤 합니다. ‘사실 영국은 매년 15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만들고 있어요’라고 하면 그들이 오히려 놀랍니다. 영국은 차세대 자동차와 첨단산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싶습니다.”

■"북한 비핵화 돕겠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이 북한 비핵화에 적극 협력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스미스 대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지 않는 정상국가로 돌아오기까지 영국 정부는 필요한 지식과 기술,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은 올해 유엔의 대북 제재 관련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두 차례 해군 함정을 한국에 파견했다. 남북한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하게 이뤄지기 전까지 최대한 압박을 가한다는 영국 정부의 방침을 보여주는 조치다. 12월에도 영국 해군 함정 한 척이 한국에 올 예정이다.

■약력

△1958년 독일 출생
△영국 옥스퍼드대 학부, 대학원 졸업(언어학 석사)
△1981년 영국 고용노동부
△1986년 영국 외무부
△1989년 주일본 영국대사관 서기관
△1992년 외무부 안보정책과 핵정책팀장
△1995년 외무부 남유럽국 부국장
△1998년 주러시아 영국대사관 경제무역 참사관
△2002년 외무부 동북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
△2004년 외무부 동북사무국 국장
△2007년 주오스트리아 영국대사·국제원자력기구 영국 대표
△2012년 주우크라이나 영국대사
△2018년 3월~ 주한 영국대사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
고종이 내준 땅에 1892년 완공…붉은색 벽돌의 관저 '고색창연'

서울 정동 덕수궁 옆에 있는 영국대사관은 1892년 지어졌다. 영국은 1884년 조선과 수교했을 때 무신 신헌이 살았던 한옥을 공관으로 사용했다. 그 뒤 고종황제에게 그 땅을 하사받았고 벽돌과 석재를 이용한 서양식 건물을 새로 지었다. 개화기 대사관 중에서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는 외국 공관은 주한 영국대사관이 유일하다.

주변이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원엔 나무와 꽃이 무성해 대사관 안에 들어가면 아늑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대사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소는 1890년에 세워진 대사관저다. 사무동 뒤편에 있는 관저는 서양식 붉은색 벽돌 건물로 130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 잘 묻어난다. 관저 내부도 벽난로와 소파, 은은한 조명 등이 목제 인테리어와 어우러진 전통 영국식이다.

주한 영국대사관의 주방은 한국인 김요셉 총괄셰프가 8년 넘게 책임지고 있다. 김 셰프는 유명 요리스쿨인 르코르동블루 런던캠퍼스 출신으로 런던 메리어트호텔과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르가브로슈 등에서 10여 년간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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